[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47] 이재무의 "맨 처음 고백"
맨 처음 고백
이재무
티격태격 40년을 넘게 살아왔네. 생각하면 징글징글한 세월이야.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의 떨림은 오래지 않아 약 닳은 건전지처럼 무감해졌지. 미안해, 당신,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 솔직히 의가 맞지 않아서 당신을 떠나려고 한 적도 있었어. 하지만 잘 참고 살았어. 당신 아니었으면 어떻게 지금의 내가 있겠어. 당신이 새삼 고마워! 어쨌든 당신 덕에 집도 장만하고 이나마 평균적 삶이 가능해졌으니까. 하긴 내가 당신을 원망했듯이 당신도 날 원망하며 떠나고 싶을 때가 왜 없었겠어? 당신이 내 능력을 무시할 때는 죽고도 싶었지. 사십 년이 농담이야? 흔한 말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잖아. 이젠 우린 떠날 수 없어. 운명이니까. 사랑해, 당신!
나는, 늦은 밤, 술을 마시며 시에게 맨 처음 고백을 했다.
―『정다운 무관심』(천년의시작, 2025)

[해설]
송창식의 명곡 중에 <맨 처음 고백>이 있는데 1967년 곡이다. 2023년 4월 29일에 방송된 KBS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는 ‘아티스트 송창식’ 편으로 꾸며졌는데 이무진이 이 곡으로 제1부 최종우승을 했다. 사라진 곡이 아닌 것이다. 장장 56년의 세월을 흘러 다시 우리 귓가에 이 노래가 들려왔으니 말이다.
이재무 시인은 1983년에 등단했으니 40여년 동안 시를 써왔다. 작년 5월 30일에 펴낸 새 시집에 실려 있는 이 시를 읽어 나가다가 시인이 애처가 정도가 아니라 공처가인 모양이다 생각하면서 씩 미소를 지었는데 제2연을 읽고 뒤통수를 한 대 딱 맞은 느낌이 들었다. 제1연의 내용 전부가 의인화한 시에게 바치는 사랑 고백이었던 것이다. 집에서 집 밖에서, 쉬면서 산책하면서, 혼자 있으면서 얘기 나누면서, 가르치면서 배우면서, 책 읽으면서 책 만들면서 줄기차게 시상을 떠올리고 쓰고 고치고……. 40여 년을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낸 시집이 『섣달그믐』『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슬픔에게 무릎을 꿇다』『벌초』『몸에 피는 꽃』『시간의 그물』『위대한 식사』『푸른 고집』『저녁 6시』『경쾌한 유랑』『슬픔은 어깨로 운다』『한 사람이 있었다』『고독의 능력』『정다운 무관심』 등이다. 시선집 『오래된 농담』『길 위의 식사』『얼굴』, 시평집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핀다면』『긍정적인 밥』, 산문집 『쉼표처럼 살고 싶다』『생의 변방에서』『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집착으로부터의 도피』, 공저 『민족시인 신경림 시인을 찾아서』, 편저 『대표시, 대표평론Ⅰ·Ⅱ』 등을 냈다. 시를 위한 순교자, 이재무 시인이다.
[이재무 시인]
1958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한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83년 《삶의 문학》《실천문학》《문학과사회》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난고(김삿갓)문학상, 편운문학상, 윤동주시상, 한남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유심작품상, 이육사시문학상, 풀꽃문학상, 송수권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이며, (주)천년의시작 대표이사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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