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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64] 이은란의 "시인 청문회"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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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청문회

 

이은란

 

, 아니오로만 답하세요

 

당신은 시인입니까?

 

시를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

맞습니까?

……

 

당신이 이 시들을 썼습니까?

 

당신이 쓴 것들이 시 맞아요?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 맞아요?

……

 

시 맞습니까?

그게 시라는 것은……

 

, 아니오로만 답하라고!!

 

진짜 시라고 생각합니까?

……

 

그런데도 당신은 시인입니까?

아니요

 

*시인에 대한 사전적 의미.

**시에 대한 사전적 의미.

 

―『기린의 표정을 읽을 수 있나요』(달아실, 2026)  

시인 청문회 _ 이은란 시인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시인이 되기 위하여

 

  아이고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시인이 청문회에 불려왔다. 질문이 날카롭다. 이 시의 화자는 재판을 받고 있는 미결수인 양 쩔쩔맨다. 검사가 피고인을 문초하듯이 질문자가 시인에게 물으니 시인은 내가 쓰는 것이 시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이런 걸 쓰고 있는 당신이 시인이냐고 묻자 시인이 그만 대답을 못하고 만다. 아아, 나는 시인도 아니야. 화자는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만다. 지금 이 시대의 시인을 희화한 것인지 풍자한 것인지, 시인의 처지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플라톤은 침대를 예로 들어 시인추방론을 주장하였다. 신이 만든 이데아로서의 침대가 있고 그것을 모범으로 삼아 침대를 만든 제작공이 있는데 시인은 침대를 언어로 침소봉대하질 않나 침대는 침대가 아니다같은 헛소리도 하니 우리가 만들어야 할 이상세계(이데아의 세계)에 시인은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시인추방론이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말에 반대하였다. 이 세상은 법률과 원칙, 이성과 논리만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 온갖 기쁨과 슬픔, 외로움과 그리움,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즐거움, 분노와 증오심, 꿈과 미래를 추구하는 예술가가 필요한데 언어를 구사하여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이가 시인이라고 했다. 플라톤에게는 국가가 중요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예술이 중요했다. 스승에게는 규약이 중요했지만 제자에게는 자유가 중요했다.

 

 우리나라만큼 문예지가 많은 나라도 없고 문인이 많은 나라도 없다. 쉽게 문인이 되다 보니 부작용도 없지 않지만 시는 우리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자세를 바르게 취하게 하고 내 마음의 온기를 남에게 전하게 한다. 한자가 표의문자인데 공교롭게도 말씀 言 자에 절 寺 자가 합쳐진 것이 시(). 말로써 절을 짓는다는 것! 사람 人 자는 지게와 지겟작대기의 모양이니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사는 존재가 人()이다. 詩人이 많아서 우리나라가 이나마 범죄의 소굴이나 소돔성 같은 곳이 아니라 시의 나라, 시인의 나라, 문학의 나라, 인문학의 나라가 되었다. 지금 이 위상이 많이 흔들리고 있지만 시인은 자기만의 개성을 발휘하여 창의적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신도 너무 바빠 모든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희로애락(喜怒哀樂), 그리고 애오욕(愛惡慾)을 다 살펴볼 수 없어서 시인에게 예술의 기능을 살짝 위임했는지도 모른다. 시인을 짧게 발음하면 신이 되고 신을 길게 발음하면 시인이 된다. 그러니 이은란 시인이여. 플라톤이나 누가 그런데도 당신은 시인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라고 큰소리로 대답하십시오

 

  [이은란 시인]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교육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서울의 초등학교와 교육청을 거치며 38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시집 『사랑부전나비를 위하여』를 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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