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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WBA 세계복싱챔피언 홍수환의 스포츠 헤리티지 정신

KAN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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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5기의 신화에서 다음 세대가 이어갈 살아 있는 유산으로

[김진용 칼럼니스트 | 액터스뷰] 한 시대의 챔피언을 기억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가 가장 빛났던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남긴 정신을 다음 세대가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필자는 후자를 스포츠 헤리티지(Sports Heritage)라고 생각한다.

홍수환 1977년 승리의 순간

그런 의미에서 홍수환은 아직 링에서 내려오지 않은 사람이다.

 

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꺾고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홍수환은 대한민국 복싱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당시 그는 WBA와 『더 링(The Ring)』 밴텀급 세계챔피언에 동시에 올랐다. 그리고 1977년 11월 26일 파나마에서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었다. 무패의 강자 엑토르 카라스키야와 맞붙은 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세계타이틀전이었다. 2라운드에서 무려 네 차례나 쓰러졌지만 그는 다시 일어났고, 바로 다음 3라운드에서 카라스키야를 KO로 무너뜨렸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지금도 기억하는 ‘4전5기’ 신화의 탄생이었다.

 

그래서 홍수환이라는 이름에는 승리보다 더 강한 의미가 담겨 있다.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 강한 것이 아니라, 쓰러지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강하다는 것.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이 정신은 낡지 않았다. 오히려 실패와 좌절이 일상화된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더욱 현실적인 메시지가 되고 있다.

 

그리고 2026년, 홍수환은 인생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상실을 맞았다.

 

오랜 세월 사랑했던 여인이자 삶의 동반자였던 가수 옥희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홍수환은 투병 기간 아내의 곁을 지켰고 마지막 순간도 가족들과 함께했다. 영결식에서는 아내를 향한 고별사를 읽으며 끝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한때 세계의 강펀치를 견뎌냈던 챔피언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앞에서는 한 사람의 남편이었다.

챔피언의 영원한 동반자, 사랑하는 아내 겸 가수 옥희
홍수환 & 옥희 부부와 2026년 2월 

그러나 그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글러브를 끼고 카메라 앞에 선다.

 

현재 홍수환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홍수환 복싱TV’를 통해 복싱의 기초부터 잽과 스텝, 거리 조절, 방어와 공격의 원리까지 직접 가르치고 있다. 채널 구독자는 6만7천 명을 넘어 7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누적 조회 수도 970만 회를 넘어섰다. 화려한 편집이나 자극적인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다. 세계 정상에 올랐던 한 노장의 경험과 기술, 그리고 특유의 유머와 인생철학이 콘텐츠의 중심에 있다.

 

놀라운 것은 그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과거 홍수환의 경기를 기억하는 세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젊은 복싱 입문자들이 질문을 하고, 여성과 청소년들이 영상을 찾아보며, 체격이 작아 고민하던 사람들도 그의 한마디에서 자신감을 얻는다.

 

최근 ‘나보다 상대가 키가 클 때’를 설명하던 영상에서 홍수환은 아주 인상적인 말을 던졌다.

 

“세계를 정복한 로마의 칼은 짧았습니다.”

유튜브 채널 '홍수환 복싱TV' 화면 캡쳐

복싱을 설명하는 말이지만 인생을 이야기하는 문장처럼 들린다. 칼이 길다고 반드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팔이 길다고 반드시 상대를 이기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거리를 알고, 들어갈 순간을 알고, 두려움을 이겨내며 한 발 앞으로 나갈 수 있다면 약점은 오히려 새로운 전술이 된다. 체격이 작아서, 출발이 늦어서, 가진 것이 부족해서 주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홍수환다운 가르침이 있을까.

 

그에게 복싱은 주먹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리를 판단하는 냉정함, 공격을 받아내는 인내, 결정적인 순간 앞으로 들어가는 용기, 넘어졌을 때 다시 중심을 잡는 회복의 과정이다. 그것이 바로 홍수환 복싱의 철학이며 4전5기 정신의 본질이다.

 

필자는 최근 홍수환 챔피언과 함께 그의 이름과 초상, 복싱 철학과 역사적 자산을 하나의 스포츠 IP 브랜드로 정립하고 다음 세대로 확장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홍수환 스타복싱’이다. 홍수환에게 직접 전수된 복싱 교육 콘텐츠와 철학을 기반으로 체육관과 교육 시스템을 확장하고, 챔피언의 이름이 간판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훈련문화와 지도철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홍수환 인파이터' 게임 시스템 AI 생성 화면

또 하나는 필자의 해병대 선배 겸 사업가인 이상길 지지텍 대표가 개발한 체감형 아케이드 복싱게임 ‘홍수환 인파이터’다. 현대인들이 주먹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복싱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도록 홍수환이라는 상징적 인물과 새로운 기술·콘텐츠를 결합하는 프로젝트다.

 

누군가는 이를 사업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이 프로젝트의 본질은 조금 다르다. 전설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전승하는 일이다. 스포츠 영웅의 초상과 이름을 상품에 붙이는 것만으로는 스포츠 헤리티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사람이 살아온 철학과 기술, 이야기, 가치가 체육관과 영상과 교육, 게임과 문화콘텐츠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유산이 된다.

 

세계적인 스포츠 산업을 보면 이미 전설적인 선수의 이름은 경기 기록에만 남아 있지 않다. 아카데미가 되고, 브랜드가 되고, 박물관이 되고, 교육 프로그램과 콘텐츠가 된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가진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직접 전할 수 있다면 더욱 값진 일이다.

 

홍수환에게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강력한 자산이 있다.

전 국민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던 그 순간들

1974년 세계챔피언의 역사, 1977년 파나마에서 탄생한 4전5기의 신화, 그리고 무엇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직접 글러브를 끼고 후배들에게 주먹을 가르칠 수 있는 살아 있는 목소리다.

나는 오히려 지금부터가 홍수환이라는 브랜드의 '제2의 전성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전성기가 세계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르던 선수 홍수환의 시대였다면, 두 번째 전성기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스포츠 헤리티지'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을 가슴에 묻고도 그는 오늘 다시 카메라 앞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잽을 가르치고 스텝을 설명한다.

 

어쩌면 그것 역시 4전5기인지 모른다. 우리에게 4전5기는 이제 1977년 파나마에서 있었던 한 경기의 기록만이 아니다.

홍수환 챔피언과 필자의 약속이 모든 이들의 희망으로

삶이 자신을 네 번 쓰러뜨리더라도 다섯 번째에는 다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가는 것. 그리고 자신이 어렵게 얻은 지혜를 뒤에 오는 사람에게 남겨주는 것. 홍수환의 진정한 챔피언 벨트는 박물관에 보관된 과거의 벨트가 아니라, 오늘도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다시 울리고 있는 ‘일어서라’는 한마디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필자가 바라보는 세계챔피언 홍수환스포츠 헤리티지 정신이다.

KAN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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