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19] "할머니 사랑" 외 4편
할머니 사랑
김다경(여수 웅천초 6학년)
할머니 보내주신 텃밭 속 감자들
어머니 한 솥 쪄서 이웃과 나눌 때에
할머니 이웃 사랑이 우리 동네 닿아요
점심시간
이현승(서울 관악고 2학년)
점심시간 10분 전 오늘은 뭘 먹을까
선생님 말씀 날아다니고 종소리만 기다리네
꼬르륵 뱃속에서 먼저 울려버린 종소리
공부 차단기
홍지우(강릉 영동초 6학년)
공부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지 않고
온종일 폰만 잡고 틱틱틱 탁탁탁탁
내게 온 공부 차단기 그 이름은 핸드폰
강이
김강이(서울 선정국제고 3학년)
아침에 눈을 뜨면 학교 가기 싫었다
교실은 어색하고 하루가 힘이 든다
하지만 졸업을 하면 보람됐다 하겠지
창문
허진(룡정시 북안소학교 5학년)
맑고 개인 날에는 빛을 불러 담아놓고
비 오는 날에는 빗줄기 막아내요
투명한 작은 마음은 한평생을 변함 없네
―《어린이 시조나라》(한국시조시인협회, 2025년 상반기호)

[해설]
우리의 희망은 어린이와 청소년
아이들이 시조를 짓고 있다. 기특하고 대견하다. 시조의 자수를 잘 맞춰서 쓰는 것이 무척 기특하고, 제법 그럴듯한 주제를 제시할 줄 아는 것이 대견하다.
서관호 시조시인이 30호까지 내던 반년간지《어린이 시조나라》는 31호부터는 사단법인 한국시조시인협회에서 내고 있다. 그간 한국의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 1,000명이 넘게 여기에 동시조를 발표하였다. 특히 매호 연변 조선족 아이들에게 동시조를 청탁해 10편 가까이 싣고 있다. 중국 국적의 조선족 학생들이 배우는 한글 교과서 『조선어문』을 중국 정부가 발간 중지시켜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처럼 한글 교육이 안 이뤄지게 되었다고 하니 동시조 쓰기는 더욱 값진 일이다.
「할머니 사랑」의 목적은 인정에 있지 않을까. 할머니가 감자를 한 박스 보낸 것은 인정인데 어머니는 그 인정을 이웃과 나눈다. 감자는 오래 두면 싹이 나므로 어머니의 행동은 이래저래 옳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면 한창 많이 먹을 때인데 점심시간까지 기다리자니 허기가 져 선생님 말씀도 귀에 안 들어오고,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종소리보다 먼저 울린다. 도시락을 싸서 다닐 때는 2교시 끝나고 절반 먹고 3교시 끝나고 절반 먹어 점심시간 전에 도시락을 비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선생님마다 들어오셔서 코를 킁킁대며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야?” 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지금은 급식이 나오니까 그런 풍경은 사라져 버렸다.
홍지우 학생은 핸드폰의 다른 이름을 ‘공부 차단기’로 붙였다.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공부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중독이 되어 하루에도 몇십 번은 꺼내어 들여다본다. 게임을 할 수 있으니 친구도 필요 없다. 핸드폰의 폐해를 잘 알고 있으니 이 학생은 적절히 자제해서 사용할 거라고 생각한다.
네 번째 소개한 동시조는 제목이 자기 이름이다. 고3이 이제는 지쳤다. 게다가 서울 은평구에 있는 선정국제관광고이니 고등학교인데도 간호과, 호텔항공관광과, 관광콘텐츠과 같은 과가 있다. 어떤 날은 학교 가기 싫어 미칠 지경이 되지만 졸업장을 받아야 ‘보람됐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나 자신을 객관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다니자. 여기까지 왔으니 좀 더 버티자. 다짐하고 있는 김강이 학생이다.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는 조선족 5학년 허진이 쓴 시가 제일 높다. 창문에 빛을 담아놓는다느니 창문이 투명한 작은 마음을 갖고 있다느니 하는 창문의 의인화 기법은 초등학교 5년치고는 구사하기가 쉽지 않은데…… 앞날이 기대된다.
국내 유일의 동시조 잡지인 《어린이 시조나라》를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동심은 착한 마음이다. 이 세상에 만연해 있는 온갖 사회악에 물들지 않고 착한 마음씨를 아이들이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므로 살맛이 난다. 아이들 마음이 고우니까 세상이 쉽게 망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