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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98] 이산해의 "마음이 고프면"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98] 이산해의 "마음이 고프면"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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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의 동시]

마음이 고프면

 

이산해

 

밥이 늦어도 걱정인데

하물며 배움이 늦으면 어쩌겠니

 

배가 고파도 걱정인데

하물며 마음이 고프면 어쩌겠니

 

집이 가난해도

마음 치료를 할 약이 있단다

 

둥근 달이 떠오를

그때를 기다려 보렴

 

食遲猶悶況學遲

腹肌猶悶況心肌

家貧惟有療心藥

須待靈臺月出時

 

―최향 엮음, 『우리 옛 동시』(글동산, 2000) 

소년시절 이산해가 시를 짓고 있는 장면. 상상도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조선조 때의 동시

 

  이산해(15381609)는 조선조 중기 때의 정승이자 대단한 문장가다. 동인이었다가 같은 동인인 온건파 류성룡과 갈라지며 강경파 북인의 당수가 된 인물이다. 세 번이나 영의정을 지냈고 조선시대 서예 8대가 중 한 사람이다. 토정 이지함의 조카이며 문집 『아계집』이 있다.

 

  이지함이 자신의 어린 조카 이산해가 책 읽느라 밥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못 알아듣는 걸 보았다. 이것을 소재로 해서 시를 한 수 써보라고 했더니 즉석에서 쓴 시다. 한시지만 아무래도 동시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 같다.

 

  소년 이산해는 밥은 제때 안 먹어도 되지만 배움은 때가 있어서 그때그때 배워야 한다고 썼다. 그리고 배가 고픈 것도 걱정거리가 되지만 마음이 고프면 큰일이 아니냐고 독자에게 심각하게 묻는다. 이산해는 마음이 고플 때 보름달을 보면 그래도 마음이 환해지고,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느껴질 것이라고 하면서 이 동시를 끝냈다. 우리의 고픈 마음이 둥그런 보름달로 인해서 푸근해진다. 아이의 상상력이 놀랍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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