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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22] 바이스 플라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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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22] 바이스 플라이어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바이스 플라이어

 

김강호

 

 

자꾸만 흔들려서 내 몸이 헐거울 때

고된 삶 힘들어서 이탈하고 싶을 때

어느새 단걸음에 와

지탱해준 그대여

 

감미로운 그 입술에 송두리째 갇혀서

놓아주지 않기를 바라며 살아온 생

한 번쯤 바스라져도 참, 좋았을 순간들

 

일상의 언저리가 녹슬고 닳아져서

날마다 그대 입술 꿈꾸며 살고 있어

가슴이 무너져 내릴 때

찾아오는 슬픈 사랑

 

바이스 플라이어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바이스 플라이어」는 흔들림 속에서 찾아온 위안과, 그것이 지닌 달콤한 이상향을 그려내고 싶었다. 흔들리는 몸과 헐거워진 삶을 내세우며, 인간 존재가 지닌 불안정성을 전면에 드러나게 하고, 위기 때 한걸음에 다가온 타인의 존재를 지탱해준 그대로 호명했다.

 

여기서 그대의 입술은 단순한 애정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을 버티게 하는 일종의 부표와도 같다. 흔들리던 몸이 붙잡히듯, 달콤한 입맞춤에 온전히 갇혀버린다. 이는 곧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은밀한 피난처이자, 동시에 헤어나올 수 없는 굴레이기도 하다. ‘송두리째 갇힘이라는 표현은 사랑이 주는 황홀의 전면성을 드러내지만, 그 속박은 또한 자발적인 구속, 스스로 원해 들어가는 감옥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사랑은 단순한 안식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한 번쯤 바스라져도 참 좋았을 순간들이라 고백하고 싶었다. 여기서 바스라짐은 파괴이자 환희의 상징이다. 삶이 허물어지고 자신이 부서져도, 사랑이 주는 충만은 곧 파멸을 불사할 만큼 강렬하며, 이는 인간이 지닌 존재의 이중성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과 동시에 무너지고자 하는 충동을 그린 것이다.

 

세 번째 연에서 일상의 언저리가 녹슬고 닳아간다는 진술은, 반복되는 삶의 퇴색과 피로를 표상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그대의 입술을 꿈꾸며살아가는 동력이 된다.
 

마지막으로, ‘가슴이 무너져 내릴 때 찾아오는 슬픈 사랑은 이 시 전체의 정조를 응축했다. 여기서 사랑은 단순히 위안의 언어가 아니라, 무너짐과 함께 도래하는 숙명적 감정이다. 그것은 구원인 동시에 비극이며, 달콤한 입맞춤의 잔향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결핍의 그림자이다. 결국 「바이스 플라이어」는 삶의 균열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이중성을 위안과 속박, 환희와 파멸, 충만과 결핍의 입술 '바이스 플라이어'라는 연장을 통해 시인이 가장 즐겨 쓰는 중의법을 선택했다.

김강호 시인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시인 김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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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시인#시조읽기#바이어플라이어#시조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