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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15] 한분순의 "사랑이라 쓰려다 너의 이름을 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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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15] 한분순의 "사랑이라 쓰려다 너의 이름을 쓰며"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사랑이라 쓰려다 너의 이름을 쓰며

 
한분순 

 

꽃들을 걸어 뒀지,

그대 셔츠 단추에

 

옷깃은 잘 여며요,

나에게만 열어줘

 

사랑을 받아 쓰려다

어쩐지 쓴,

너의 이름
 

사랑이라 쓰려다 너의 이름을 쓰며_한분순 [이미지: 류우강 기자]

위 시조는 동학사에서 펴낸 시조집 <그대의 끼니가 아름답기를> 첫 번째 실린 작품이다.
 

정치에 철의 여인 " 마거릿 대처" 수상이 있다면, 대한민국 시조에는 한분순 이라는 "시조의 여인"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만날 때마다 세월을 되돌린 듯 팽팽한 외모와, 소녀 같은 명랑함과, 55년 시력에서 젊은 언어들로 길어 올린 시편들이 그렇다. 한분순의 시는 싱싱한 언어의 양식장이다.  힘차게 새벽을 물고 튀어 오르는 시편들에게서 시조의 답을 찾는다.

 

한분순 시인의 「사랑이라 쓰려다 너의 이름을 쓰며」는 제목부터 이미 강한 서정적 긴장과 언어의 절제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시는 사랑이라는 추상적 감정을 구체적 존재인로 대체함으로써, 감정의 보편성과 개성이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방식은 모더니즘 시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 감정의 직접적 표현보다는 이미지와 암시를 통한 간접적 전달과 일맥상통한다.
 

시인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너의 이름을 쓴다. 그 감정을 환기시키는 구체적 대상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절절한 감정이 떠오른다. 이는 절제된 감정에서 오는 여운을 동반한다.

 

특히 중장에서 드러내는 옷깃은 잘 여며요,/ 나에게만 열어줘는 저절로 웃음이 일게 한다.
 

시인은 언어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감정의 결을, 단어 사이의 여백과 중단된 문장에서 포착하고 있다. 이처럼 절제되고 깊은 맛을 우려낸 시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으로써 행복한 일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자작시로 찾아온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시인 김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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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아카데미#김강호시인#한분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