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 향기] 능소화 필 때 - 박금아

능소화 필 때
박금아
성가병원 울타리에 능소화가 붉게 피었습니다. 임을 기다리다 죽은 이의 넋이라 했던가요. 기다린다는 것은 목을 빼는 일. 주렁주렁한 그리움은 담장을 넘어 하늘가 빈자리에 무지개로 걸렸습니다. 이제는 더는 떠돌아다닐 필요 없는, 누군가의 가슴에 정착할 그리움입니다.
안토니오 형제와 함께했던 마지막 시간이 떠오릅니다. 그날은 병실 문을 열 때부터 달랐습니다. 환하게 웃던 모습은 사라지고 손을 내밀어도 표정이 없었습니다. 멀건 미음과 같은 김칫국물 서너 술이 전부인 식사도 밀쳐두었었지요. 성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어줄 때도 내내 눈을 감은 채로였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만 갈게요. 갔다가 또 올게요."
혼잣말이었는데 듣고 있었나 봅니다.
"못 와요. 이젠 못 와요. 5분이라도.... 바깥에...."
산책을 하고 싶다는 말에 간호사는 난색을 보였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떼어 내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이었지요. 불현듯 마지막 부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의식은 종종 의식의 한계를 비웃듯 뛰어넘곤 하지요. 간청한 끝에 10분간의 외출을 허락받았습니다.
생각을 놓기가 어렵다지만 몸을 놓기는 더 힘들다는 말이 있지요. 간신히 옮겨 앉혔습니다. 침대에서 휠체어까지의 거리가 천 리인 듯했습니다. 육신을 다 내려놓았으니 집착할 무엇이 남았을까요. 그의 말을 들어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강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우는 저녁 해를 받으며 담장을 따라 능소화가 피어나고 있었어요. 그 속으로 사람들이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간간이 웃음소리와 함께요.
무대에 오르듯, 마당 한가운데에 휠체어를 세웠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주목받아 본 적 없던 그에게 망설망설하던 햇살이 달려와 잔광을 쏟아부었습니다. 능소화도 큰 소리로 팡파르를 불어 주었어요. 그는 부신 듯 눈을 감았습니다.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졌어요.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어요.
"형제님, 저 꽃 보이세요?"
그가 간신히 눈을 떴습니다.
"느으응... 능, 소, 화네요."
그 순간, 기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환자복 주머니에서 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간호사의 다급한 호출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황급히 병실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는 정신을 놓고 말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는 손에 달랑 나무 묵주 하나를 쥐여 주었을 뿐입니다.
병원 문을 나서는데 3년 전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건강검진에서 이상을 느낀 그가 재검사에서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오던 날이었지요. 병원을 다녀온 몇 시간 사이에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거쿨지던 모습은 사라지고 거룩한 성사를 준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어요....
여자를 찾아 헤맨 일이며, 그때 생긴 울화증으로 방 안에서는 잠을 잘 수 없어 노숙을 시작했다는 말도 했습니다....
창문 너머에서 굵은 빗소리가 들려왔어요. 장맛비 속에서 능소화 한 그루가 파란 양철 대문 위로 가지를 올리고 있었지요. 아프게 털어낸 고백들이 줄기 마디마디에서 한 겹 한 겹 꽃송이로 피어났어요. 세찬 빗줄기에 상처를 다 씻어 낸 처연한 빛으로 말이지요.
능소화가 필 때면 그가 생각납니다. 기대어 오르다 보면 꽃들은 누군가의 가슴에 다다르겠지요. 때론 주체하지 못할 그리움으로 떨어져 내릴 때도 있겠지요. 그래도 슬퍼할 필요는 없어요. 어딘가에 닿기만 하면 다시 꽃으로 피어날 테니까요. 땅에 떨어진 능소화를 보면 "능소화가 피었네!"라고 말을 하게 되었어요. 그가 떠난 뒤로 낙화는 개화의 다른 방식이란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용서라는 말에 색色이 있다면 장맛비 내리는 날, 능소화 꽃잎에 그렁그렁 맺힌 물방울들의 색깔일 거예요.
* 거쿨지다 : 거쿨지다 : 몸집이 크고 말이나 하는 짓이 씩씩하다

[수필 읽기]
등산로 입구에 주황색 능소화가 화사하게 피었다.
능소화는 자신을 한껏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언제든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짙은 색깔의 옷을 입었을까. 실제로 빨강색 만큼이나 주황색은 눈에 잘 띄는 색이다. 전설을 알기 전에는 그저 고운 빛깔의 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기다린다는 것은 목을 빼는 일이라고 한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어디쯤 올까 하고 목을 길게 빼고 까치발을 하고 멀리 내다보는 모습이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 그래서 그리운 사람 한 두 사람은 가슴 속에 늘 간직하고 살아간다.
안토니오 형제는 암 진단을 받고 오히려 초연해진다. 그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마음일 때 가능한 것이다.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고통과 슬픔을 품고 살았을지, 결국 그는 상대를 용서했고, 이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초연함이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와 '그리움'이다. 능소화가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은 그 전설에서 알 수 있다.
금등화 金藤花라고도 불리는 능소화의 개화시기는 7~8월이며 꽃은 약용으로 쓰인다. 능소화의 한자말인 '능소凌霄'는 '하늘을 타고 오르다' 라는 뜻으로, 덩굴빨판이 있어 어디든 기어올라 기어이 하늘을 보는 꽃이다. 옛날에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이 경우의 꽃말은 '명예'이겠다.
능소화에는 슬픈 전설이 있는데, 옛날 궁궐에 소화라는 예쁜 궁녀가 왕의 총애를 받고 궁궐 한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지만, 어쩐 일인지 임금은 그 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고, 소화는 임금이 찾아올까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쓸쓸하게 죽어갔다고 한다. 소화가 세상을 떠난 뒤, 소화가 있던 곳 주변 담장에 진한 주황색 꽃이 피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이 경우의 꽃말은 '그리움'이겠다.
작가는 안토니오 형제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손에 묵주 하나를 쥐어주었다. 그 묵주에는 작가의 기도가 담겨있다. 그가 좋은 곳에서 편하게 잠들라는 기도일 것이다. 묵주는 카톨릭에서는 큰 구슬 5개, 작은 구슬 54개를 줄에 꿰고 끝에 십자가를 단 염주이다. 불교에서의 묵주는 신자들이 염불이나 수행 시 사용되는 구슬로, 염주라고도 불리며 일반적으로 108개의 구슬로 이루어져 있다.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간절히 기도를 한다.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바라며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한 기도를 한다. 기도할 때는 호흡을 조절하며 정신을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기도는 좋은 의미를 갖고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낙화는 개화의 다른 방식이라는 것. 모든 것은 태어나서 자라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흙에서 나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솟아 오르는 번뇌를 끊기 위해 오늘도 기도를 한다.
김영희 수필가, 코리아아트뉴스 칼럼니스트, 문학전문 기자
충남 공주에서 태어남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라피 작가,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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