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42] 김강호의 “조팝꽃”
조팝꽃
-정신대
김강호
뼛속에
녹아드는
슬픔을
감당 못해
온몸이
야위도록
가슴 쥐어뜯더니
세상을
덮고 남을 듯
피워 올린
눈물 꽃

정신대의 이름 아래 새겨진 비극을 시는 ‘조팝꽃’이라는 상징으로 불러냈다. 봄 언덕에 소복하게 피어 흔들리는 그 흰 꽃은, 사실 하얀 기쁨의 꽃이 아니라 뼛속까지 스며든 슬픔이 밀려올 때 남은 마지막 생의 흔적이다. 시의 화자가 되어 “뼛속에 녹아드는 슬픔”이라 말했으며, 그 고통이 피부나 근육을 넘어 존재의 핵심,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깎여 나가는 자리까지 파고들었음을 드러냈다. 그 무게는 단순한 상처나 기억의 고통이 아니라, 한 시대의 여성들이 강제로 겪어야 했던 모멸과 사라진 계절들의 집적이다.
“온몸이 야위도록 / 가슴 쥐어뜯더니”는 육체의 파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삶이 통째로 뜯겨 나가고, 그 흔적이 오랫동안 말해지지 못한 채 침묵의 골짜기에 묻혀 있던 시간이다. 야윈다는 것은 영양의 결핍이 아니라 말할 언어를 잃은 존재의 쇠약함이다. 누구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던 울음, 누구도 대신 말해주지 않았던 생의 절규를 이 두 줄의 짧은 이미지에 응축시켰다. 그러나 시에서는 절망을 고백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세상을 덮고 남을 듯 / 피워 올린 눈물 꽃”은 화사한 백색으로 피어나지만, 이 시에서의 흰빛은 순결이나 환희의 빛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 많이 울어 눈물샘이 말라버린 자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빛, 눈물조차 더 이상 흘릴 수 없어 꽃의 형상으로 변해버린 이들의 기록이다.
결국 이 시는 꽃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꽃이 될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의 삶을 기리며, 흐르지 못한 눈물이 어떻게 세상에 피어나는지를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조팝꽃은 봄마다 다시 피고 지지만, 그 흰 잔설 같은 꽃송이는 이 땅의 역사 위에 꺼지지 않는 기억의 빛으로 남겨,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슬픔의 호출이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