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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임창연의 "협잡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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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임창연의 "협잡의 시대"

이승하 시인
입력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95]

협잡의 시대

 

임창연

 

초봄 버드나무 가지 끝에 겨우내 견딘

마른 나뭇잎들이 낚시미늘에 걸린 작은 고기들처럼

버둥대며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알 수 없는 생이란

바싹 마른 명태처럼 미라로 남는 것

영혼이 떠난 육체가 남은 자들에게

연구가 되고 단서가 되어

역사로 부풀려지고

문서로 남은 기록들이 왜곡되어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때

비루한 사람들은 끼니를 허겁지겁 때우고

권력의 정점이 정의란 이름으로

그럴듯한 사기를 친다

 

—『사차원 놀이터』(창연출판사, 2022)

 

  

협잡의 시대  [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협잡(挾雜)이란 그릇된 짓으로 남을 속이는 것이다. 시인은 현대를 통틀어 협잡의 시대로 규정하였다. 양식(良識)이나 정직(正直)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라 협잡의 시대가 되고 말았으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제1연에서는 한겨울을 나무 끝에 매달린 채 악착같이 버틴 마른 나뭇잎들이 낚시미늘에 걸린 작은 고기들처럼버둥대며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나뭇잎들은 서민일 것이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이 생각나는데 가게의 문을 닫지 않고 있으면 용하고 장한 시대이다. 버티기가 쉽지 않다. 이들이 생존할 수 있게끔 정책적으로 도와주어야 할 위정자들이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우리 비루(鄙陋)한 서민은 끼니를 허겁지겁 때우고 있다. 재래시장에 가보면 상인은 장사하는 그 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다. 시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권력의 정점이, 즉 대통령이 정의란 이름으로 사기를 치고 있다고. 이 시를 쓴 시점이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을 이렇게까지 통렬히 비판한 시를 본 적이 없었다.

 

  승자가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역사다. 역사마저도 얼마든지 부풀릴 수 있다. 협잡의 시대인데 무엇을 못할 것인가. 대통령이 존경을 받지는 못할지언정 비판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면 그 나라가 불쌍해지고 그 나라의 국민이 불행해진다. 오늘 저녁이면 새 대통령이 탄생할 텐데 국민의 이마에 깊게 팬 주름살을 펴주는 분이면 좋겠다. 정쟁에 날을 샌다면 국민은 5년 동안 또 버둥대며 바람에 나부껴야 할 것이다.

 

  [임창연 시인]

 

  1978년 고등학교 시절 《학생중앙》 문단에 고 박두진 선생이 2회 추천

1998년 무크지 《매혹》으로, 2013년 계간지 《시선》으로 등단.

디카시집 『화양연화』, 시집 『한 외로움 다가와 마음을 흔들면』『아주 특별한 선물』 『꽃꿈』『아버지 뿔났다』『사차원 놀이터』 발간.

현재 마산문인협회 부회장, 붓꽃문학회 회장, 창연출판사 대표.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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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시인#임창연#협잡의시대#시해설#코리아아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