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 향기]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겠다. 한 달도 더 전에 줄기가 꺾여 부러진 채 버려졌던 돈나무 한 줄기. 누군가의 무심한 거친 손에 꺾여 부러진 것을, 화분만 가져오고 버리고 왔던 한 줄기. 가슴이 시렸다. 다시 그곳에 갔을 때, 아직 초록을 잃지 않은 줄기를 가져와서 돈나무 화분에 같이 심어주었다. 생의 마지막을 다른 줄기들과 함께 있으라고.
분명 잎은 계속 말라가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돈나무 잎이 도톰해졌는지 유심히 살폈다. 그렇게 또 한 달 반쯤 흘렀다. 그 줄기가 궁금했다. 살아 있는지, 혹시 뿌리가 생겼는지. 다치지 않게 조심히 흙을 헤치고 몸체를 들어보았다. 줄기는 너무나 힘없이 뽑혔다.
나는 순간 절망했다.
그랬는데... , 이게 웬일인가. 연두색 밑동 아래 뿌리 모양을 아직 다 갖추지 못한, 작은 돌기 세 개가 뾰족하게 나와있는 게 아닌가. 그 줄기는 물을 줄기 끝까지 보내려고 흙 속에서 부지런히 작은 뿌리를 만들며 서 있었던 것이다. '아! 네가 살았구나. 살아 있었어!' 눈물이 핑 돌았다. 일단 안심하고 흙을 다시 잘 덮어주었다. '마르면 안돼. 꼭 살아야 해!' 나는 돈나무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날 줄기가 부러진 돈나무 한 줄기를, 가슴이 아프지만 솔직히, '이제는 살 가망이 없겠다.' 생각하고, 제 생이 끝날 때까지 흙냄새를 맡고 있으라고 다른 화분 위에 세워 놓고, 돈나무 화분만 가져왔었다.

이제 막 뿌리를 내리느라 애쓰고 있는 돈나무 한 줄기를 살리기 위해 나는 열과 성을 다했다. 흙이 마르지 않았는지, 잎이 마를세라 식물영양제와 숯과 수액도 꽂아두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잎이 통통해졌는지, 더 말랐는지, 손끝으로 미세한 변화를 살폈다. 부러진 줄기가 뿌리를 내린 것을 확인하고 얼마 후, 화분 속 다른 돈나무 줄기들은 부러진 줄기 친구를 살려준 내게 보답이라도 하듯이, 며칠 사이에 연둣빛 어린 줄기 여덟 개를 쑥쑥 올리며 하루가 다르게 푸릇해졌다.
부러졌던 한 줄기가 살아나고 새 줄기도 여러 대 올라와 이제 돈나무는 대가족이 되었다. 그들도 두 달 반 동안 꺾여 부러졌던 한 줄기가 다시 살 수 있을지 무척 걱정했을 것이다. 나는 그를 살리기 위해 노심초사했고, 그들은 또 보답하듯 쑥쑥 잘 자라주었다. 돈나무는 처음 모습처럼 싱싱해졌다. 이제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 돈나무를 보니 더없이 기쁘고 감사하다.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겠다.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돈나무야.
- 김영희의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작가의 생각]
생生은 무엇이길래 이토록 가슴 사무치게 하는 것일까요.
생生은 얼마나 아름답기에 이토록 처절하게 지켜내야 하는 것일까요.
이 세상에 살아있음, 존재한다는 것은 경이로움, 기적! 입니다.
돈나무도 저의 기도를 들은 것만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생길 수 있을까요? 또 새 줄기를 어떻게 쑥쑥 올렸을까요? 우리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 때 기적 같다고 합니다.
'기적은 우연을 가장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적은 우연처럼 오지만 실은 우연이 아니라는 말도 있고, 기적처럼 생각되지만 수많은 우연이 모여서 기적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도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저의 사랑의 마음을 담은 간절한 기도가 돈나무를 살린 것일까요?
사람에게 비유해보면, 사랑을 극진히 쏟았을 때, 특히 자녀에게 극진한 사랑을 준다면 아이들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분명히 일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방황하고 자신을 잘 지켜내지 못하는 경우는 '사랑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섭리에 의해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끔 어떤 특별한 일들은 정말 기적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마음이 생生하는 까닭에 온갖 것들이 생기고
마음이 멸滅하면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니네.
삼계三界는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은 오직 앎뿐이다.
마음 밖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
- 원효 스님의 <오도송>에서
위의 글을 읽고 무릎을 쳤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모든 것이 생기고 모든 것이 있으며, 마음이 떠나면 모든 것이 죽고 없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말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서 마음에 따라 모든 결과도 바뀔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은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고, 그래서 지극한 마음은 지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겠지요.
돈나무는 저의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기도를 들었을까요?
아니면, 저의 기도를 듣고 누군가 가 돈나무를 살려주었을까요?
아니면, 저의 기도와 관계없이 돈나무 스스로 그의 생을 이어간 것일까요?
식물도 이러한데, 하물며 사람은 얼마나 더 큰 영향을 받을까요?
가수 김종환의 노래, '존재의 이유'에서
... 알 수 없는 또 다른 나의 미래가 나를 더욱 더 힘들게 하지만
니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
니가 있어 나는 살 수 있는 거야
... 우리의 미래를 위해 슬퍼도 조금만 참아줘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니가 있기 때문이야
널 사랑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래서 또 살아갈 힘이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사랑하는 마음'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온 마음을 담은 사랑'은 어떤 기적 같은 일을 만들지 모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세요. 있을 때 잘하세요~!
김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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