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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3인이 시조를 썼다
문학/출판

역대 대통령 3인이 시조를 썼다

KAN 편집국 기자
입력
수정2025.03.02 01:51
[이승하 시인의 하루에 시 한 편 1 ]  

전쟁 중의 봄 

이승만

거리엔 벽만 우뚝 산 마슬엔 새 밭 매고
전쟁이야 멎건 말건 봄바람 불어 들어
피 흘려 싸우던 들에 속잎 돋아 나온다

거북선 

박정희 

남들은 무심할 제 님은 나라 걱정했고
남들은 못 미친 생각 님은 능히 생각했소
거북선 만드신 뜻을 이어 받드옵니다

옥중 단시 

김대중 

면회실 마루 위에 세 자식이 큰절하며 
새해와 생일 하례 보는 이 애끓는다 
아내여 서러워마라 이 자식들이 있잖소 

―김민정 엮음, 우형숙 외 6인 번역, 『시조 축제』(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2021)에서 


[해설] 

  오늘은 삼일절이다. 1919년 3월 1일에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유관순을 다룬 박두진의 「3월 1일의 하늘」 같은 시가 있었지만 몇 해 전 3월 1일에 상론한 적이 있어서 다른 시를 찾아보았다. 뜻밖에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그래서 좀 엉뚱한 선정이지만 역대 대통령 3인이 쓴 시조 3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 3명 대통령의 치적과 과오를 논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 중 망명지 하와이에 가서 숨을 거뒀고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왼팔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숨을 거뒀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정치적 수난을 많이 겪었고 노벨평화상을 탔지만 아들 3명이 모두 권력형 뇌물 비리로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영욕의 정치적 행보는 생략하고 시조 3편을 보자. 
  

이승만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한국전쟁 중이었다. 1953년의 봄이었으리라. 이승만 대통령이 들판에 나가보았더니 전쟁의 흔적이 여기저기 완연한데 농부가 밭을 매고 있지 않은가. 어느 날에는 그 밭 에 속잎이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있는 것을 본다. 이제 이놈의 전쟁도 정전협정停戰協定을 체결해 끝날 것 같은데 그럼 농부들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겠구나, 새싹이 돋아날 것이고 곡식을 키우겠구나, 생각해 보았다. 정전 이후의 청사진도 그려보았을 것이다. 생명체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었던 것인데, 단순히 식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리. 이 마음 이 정신으로 국정을 이끌고 욕심을 내려놓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의 이순신 장군 숭배는 지나친 감이 있지만 장군의 백의종군, 민관협력, 3대첩을 통한 구국, 장렬한 죽음 등을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1967년에 충무공 탄신일이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었고 현충사가 사적 제155호로 지정되었다. 1968년에는 광화문네거리에 충무공 동상이 세워졌고 1969년에는 현충사 중건이 완료되었다. 임기 18년 중 현충사를 열네 번이나 방문했다. 이순신 장군이 밤이나 낮이나 나라를 걱정하고 전란 속의 나라를 구해냈듯이 나 또한 그럴 거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 시조를 썼다. 삼선개헌만 하고 유신헌법 반포까지 가지 않았더라면 부인이 재일교포 문세광의 손에, 자신은 김재규의 손에 저격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국내 영화 중 <명량>은 관객동원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1,761만 3,682명이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정치적인 시련을 많이 겪었는데 투옥과 미국 망명 (1982.12.23.)은 제5공화국 때의 일이다. 1981년 1월에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는데 그때는 목숨이 경각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시조를 쓴 시점은 1982년 설날이 아니었을까. 김대중 대통령은 1월 6일생이다. 세 아들이 찾아와 면회실에서 세배를 받으니 착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재임 기간 중 차남 김홍업 과 3남 김홍걸이 뇌물 수수 혐의로 처벌받는 등 대통령으로서 수모를 겪었다. 장남 김홍일은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인사청탁 대가로 돈을 받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2006년에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큰 정치를 하느라 자식 농사를 제대로 못 지은 것일까. 자식들에 대해 큰 기대를 한다는 옥중의 아버지가 쓴 이 시조의 내용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사람은 가도 시는 남는다. 영어와 아랍어로 번역하여 펴낸 『시조 축제』에는 303명의 현대시조 작품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3명 대통령의 시조를 읽었는데 마음이 영 편치 않다. 그래서 최영 장군의 시조를 읽어본다. 

한국문인협회가 펴낸 시조집 "시조 축제" 표지

녹이 상제綠耳 霜蹄 살지게 먹여 시냇물에 씨셔 타고
용천 설악龍泉 雪鍔 보검을 들게 가라 다시 빼혀 두러메고
장부의 위국충절爲國忠節을 젹셔볼까 하노라 

  최영崔瑩은 고려 말의 무장이다. 1359년에 홍건적이 서경을 함락하자 이방실 등과 함께 이를 물리쳤다. 1361년에도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하자 이를 격퇴하여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올랐다. 이후에도 흥왕사의 변과 제주 목호의 난을 평정했으며, 1376년에는 왜구가 삼남지방을 휩쓸자 홍산에서 적을 대파했다. 이런 명장이지만 시대의 격랑을 막지는 못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하고선 창왕이 즉위한 뒤에 고봉高峰으로 유배되어 갔다가 개경에서 참형되었다. 이성계는 전 왕조의 충신을 살려두었다가는 반란의 불씨가 될 수 있기에 최영을 제거했던 것이다. 

최영 장군 초상화


  우리나라 무속에서 최영을 신으로 받드는 이유는 한을 품고 죽었기 때문이다. 녹이綠耳는 날래고 좋은 말이고 상제霜蹄는 굽에 흰 털이 난 좋은 말이다. 중국 주나라의 목왕이 타고 다녔던 말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모두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준마駿馬의 대명사다. 용천龍泉은 보검의 대명사이고 설악雪鍔은 날카로운 칼을 이르는 말이다. 말을 살찌게 먹여 시냇물에 씻겨 타고서 칼을 잘 들게 갈아 둘러멘다는 것은 전투에 임하는 무장의 자세다. 나라를 위해 공을 세워보겠다는 각오가 종장에 담겨 있다. 이 작품은 그러니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밝힌 것이다. 나라가 자신에게 위임한 것은 국방이기에 그 임무를 다하겠다는 각오를 이 시조를 통해 밝히고 또 다지고 있다. 

  오늘날 ‘애국’이라는 것을 낡은 정서라고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국방의 의무를 질 필요가 없는 재외동포가 한국군으로 자원입대하는 경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애국심 외에 다른 무슨 욕망이 있어서일까? 지금도 육ㆍ해ㆍ공을 지키는 국군이 있어서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고 편히 잠들 수 있다. 오늘도 4,400톤급 구축함 충무공이순신호에 승선해 있는 해군 장병들에게 필승! 경례를 보내고 싶다.
 


연재를 시작하며 

 

  시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마음을 고스란히 복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언어로 표현된 시인의 마음이 사람을 울게 합니다. 웃게 합니다. 기쁘게 하고, 노하게 하고, 애달프게 하고, 즐겁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미워하게 하고, 욕망하게 합니다. 어떤 시는 명랑한 개울 물 소리를 내고 어떤 시는 강물의 침묵을, 어떤 시는 폭풍우의 절규를 동반합니다. 

  문을 숭상한 청나라의 강희제라는 황제가 있었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 거의 모든 선비가 시를 썼고 시집을 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 강희제는 수많은 당나라 때 시인들의 시집을 지금 이 시대의 독자들이 구해볼 수도 없고 읽어볼 길도 없다고 생각해 열 명의 학자로 한시적인 팀을 만들어 우수작들만 따로 모아 전집을 펴내라고 명을 합니다. 그래서 국가적인 사업으로 시집 편찬 작업에 착수, 무려 900권짜리 전집이 18세기 초에 간행됩니다. 주옥같은 작품만 뽑았는데 2,900명의 4만 8,900수가 실린 엄청난 전집의 이름이 『전당시全唐詩』입니다. 시가 이런 대접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시문을 좋아하여 고려 광종 9년(서기 958년)부터 과거제를 실시하면서 유교 경전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하는 명경과와 오늘날의 백일장과 비슷한 제술과를 채택했습니다. 비율로 보자면 제술과에서 뽑는 인원이 명경과보다 훨씬 많았고 대우도 제술 과가 명경과보다 더 좋았다고 합니다. 즉 시제詩題를 내주어 논설문을 쓰게 했는데 창의적인 문필력이 있는지를 살펴 국가공무원을 뽑았습니다. 이 과거제는 1894년 제1차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는데 한 달 전인 1894년 5월 15일에 마지막 과거 시험이 치러졌다고 하지요. 우와, 이 땅에서 과거제가 무려 936년 동안이나 행해졌다니! 

월요일~금요일 시, 토요일 시조, 일요일 동시,  해설을 365일 연재한다 

  시집이 잘 안 팔리느니 좋은 시가 안 보인다느니 말이 많지만 저는 지금도 이 땅의 시인들이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명 독자로서 열심히 시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3월 1일부터 시작하여 내년 2월 말까지 365권의 시집을 읽을 생각입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시를, 토요일에는 시조를, 일요일에는 동시를 평하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인 비평문이 아니라 소박한 감상문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 땅의 시인들과 어깨동무를 하고서 눈부신 시 천지를 꿈꿔 보겠습니다.

 2025년 3월 1일 이승하 올림.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KAN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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