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순의 삼삼한 음악이야기 19탄] 로큰롤의 황제 – 엘비스 프레슬리의 불멸의 카리스마
1. 미시시피 소년에서 슈퍼스타로

1935년 미국 미시시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엘비스 아론 프레슬리는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스펠과 컨트리 음악을 들으며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음악에 빠져들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흑인 블루스, 교회에서 울려 퍼지던 찬송가, 남부 전통의 컨트리가 뒤섞이며 엘비스만의 독특한 음악적 뿌리가 자라났다.
그는 결국 “백인의 외모와 흑인의 소울을 가진 가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시대의 벽을 무너뜨린다.
2. 로큰롤을 세상에 알리다

1954년, 멤피스의 선 레코드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That’s All Right〉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곡이었다.
블루스, 컨트리, 가스펠이 혼합된 그 목소리는 곧 ‘로큰롤(Rock ’n’ Roll)’이라는 새 장르의 폭발을 알렸다.
엘비스의 무대는 충격 그 자체였다.
리듬에 맞춰 흔들리는 골반 댄스는 당시 미국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고, 보수 언론은 “타락한 춤사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열광했고, 그는 단숨에 세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3. 스크린까지 장악한 스타

엘비스는 가수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1956년 영화 Love Me Tender로 스크린 데뷔를 하며 배우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3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그의 음악과 카리스마는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화려한 무대의상, 번쩍이는 미소, 그리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무대 장악력은 그를 단순한 가수를 넘어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4. 불멸의 명곡들

엘비스는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Can’t Help Falling in Love〉, 〈Love Me Tender〉, 〈Jailhouse Rock〉, 〈Suspicious Minds〉…
그의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를 넘어, 당시 젊은이들의 열망과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라스베이거스 무대에서 불렀던 〈Can’t Help Falling in Love〉는 오늘날까지 결혼식과 축제의 마지막 곡으로 사랑받는다.
그의 목소리는 세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5. 전설로 남은 로큰롤의 황제

1977년, 단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과 무대는 지금도 수많은 팬들에게 영감을 준다.
테네시 멤피스의 그의 집 ‘그레이슬랜드’는 매년 전 세계 팬들이 찾아오는 순례지가 되었고, 엘비스의 이름은 여전히 “불멸”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었다
.
그는 세대를 바꾸고, 시대를 흔든 목소리였으며, 록 음악이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도록 만든 인물이었다.
마무리
엘비스의 삶은 한 소년이 자신의 목소리 하나로 세계를 바꾸어낸 이야기다.
그의 음악은 자유와 열정, 그리고 인간의 본능적인 리듬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단순히 “로큰롤의 제왕”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는 음악 그 자체였고,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전설이다.
Soprano 디바돌체 지영순 교수

이화여대 성악과 졸
이탈리아 빠르나조아카데미아 졸
이탈리아 오페라하우제아카데미 아디플로마
러시아 쌍페떼르부르그음악원 디플로마
오페라 라보엠,카르멘,휘가로의 결혼 등 주역 출연
주성대,청주대,서원대,경기대대학원 강사 역임
현, 뮤직라이프 대표,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