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 향기] 수박 한 통 - 김영희

등을 켠 듯 작고 앙증맞은 노란 수박꽃. 꽃말이 '큰 마음'이라더니, 꽃이 진 뒤 커다란 수박을 매단다. 수박 크기만큼이나 꽃말도 넉넉하다. 여름이면 수박 한 통으로 대가족도 너끈히 먹을 수 있으니 과연 그 꽃말이 허사가 아니다.
우리가 탄 버스는 1박 2일로 대구 문학행사에 들렀다가 다음날 서울로 올라가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했다. 여선생님이 바닥에 비닐을 깔고 쟁반 위에 수박을 올려놓았다.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어서 남선생님이 큰 칼을 수박 가운데에 놓고 힘껏 누르자 수박이 반으로 쩍!하고 갈라졌다. 그리고 수박을 다시 먹기 좋게 잘랐다. 선생님은 일행에게 수박 한 쪽씩 건네주었다. 빨간 속살에 까만 씨가 박힌 수박을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입안에 가득 찬 수박즙에 금세 갈증이 사라졌다. 수박 한 쪽씩 들고 서서 먹는 사람, 앉아서 먹는 사람, 뒤돌아서서 먹는 사람들. 수박 한통은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리는 그날 그렇게 헤어지기 전에 수박 한 통으로 마지막 만찬 같은 수박 잔치를 벌였다. 짧은 시간 동안의 멋진 수박 잔치였다.
모임의 대표를 맡은 선생님은 전날 과일가게에서 싱싱하고 커다란 수박을 사면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을 생각에 즐거운 꿈을 꾸며 잠을 청했을 것이다. 수박은 그런 주인 옆에서 제가 요긴하게 쓰일 내일을 기다리며 더위도 잊고 밤을 새웠을까.

우리 일행은 새벽부터 대형 버스에 몸을 싣고 대구로 내려가느라 잠이 부족했고, 저녁에 진행된 팀 장기자랑이 끝나고는 피곤하여 빨리 쉬고 싶어졌다. 또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바빴던 우리는 수박 먹을 시간이 없었다. 수박은 전날 우리와 함께 다섯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대구로 내려와 숙소로 옮겨졌다. 수박은 아무 일 없이 우리 곁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시 차에 태워져, 덜컹거리는 버스가 달리는 대로 흔들리는 제 몸의 균형을 잡으며, 마냥 기다리고 있을 터. 수박은 어쩌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겠다고 체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여름 강렬한 햇볕을 듬뿍 받고 몸집을 키우며 단맛을 가득 품었던 수박. 뜨거웠던 긴 여름 동안 수박의 당도는 점점 더 높아졌다. 갖은 병충해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붉은 속살에 가득 찬 즙을 단단하게 에워싸고 있는 수박껍질. 그 두껍고 단단한 수박껍질은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어도 떨어뜨리지 않는 한 웬만해선 상처를 입지 않는다.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사랑으로 꼭 감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일까.
내가 어렸을 적에 여름이면, 어머니가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사와서 큰 대야에 넣은 후, 얼음에 바늘을 꽂고 장도리로 두드리면 빗금을 그으며 얼음이 갈라졌다. 그 얼음물에 수박 속을 수저로 떠 넣어 수박화채를 만들었다. 투명한 얼음 속에 담긴 빨간 과육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식구들이 빙 둘러앉아서 수박화채 한 그릇씩 받아들고 과육을 다 떠먹고 남은 수박주스를 들이켠다. 시원하게 목을 타고 가슴을 지나 위로 내려가는 수박화채는, 언제 더웠냐는 듯 몸속까지 시원해져 금방 더위를 잊게 하는 여름철 대표 음료였다. 요즘은 집에서 수박화채를 잘 해먹지 않고, 카페에서는 수박을 갈아서 만드는 수박주스나 수박스무디 같은 음료가 인기있다. 시대가 바뀌며 수박도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다.
올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낮 기온이 섭씨 37~38도를 넘나드는 높은 기온이 9월까지 이어졌다. 여름이 한 달쯤 더 길어졌다. 초가을이어야 할 9월이 한여름이 된 것이다. 길어지는 열대야에 오전부터 밤중까지 계속 에어컨을 틀게 된다. 점점 뜨거워지는 여름철에 우리들은 전기 요금 폭탄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추석이 지났는데도 여름은 좀처럼 비켜나지 않는다. 이제는 '추석秋夕'이 아니라 가을 추秋대신 여름 하夏를 써서 '하석夏夕'이라고 해야 되겠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수박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재배하는 과일이며 여름철 우리에겐 최고의 과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수박 한 통 값이 쌀 다섯 말과 같다는 기록이 있고 보니, 그 당시에는 수박이 상당히 비싼 과일이었다.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에는 맛있는 수박을 먹고 있는 쥐와 단내를 맡고 날아오는 나비들이 그려져 있다.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는 사망 8일 전에 그린 수박 그림에 '인생이여 만세!(ViVA LA ViDA)'라고 썼다. 자신의 인생을 수박으로 승화시켰다는 해석이 있다. 또한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세상의 모든 사치품의 으뜸이며, 한 번 맛을 보면 천사들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수박을 찬미하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사랑의 시인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는 수박을 '별 가득한 수박' '물의 보석상자' '과일 가게의 냉정한 여왕'이라고 예찬하였다.
휴게소 주차장에서 문우들과 함께 먹었던 수박과 어머니가 만들어주었던 수박화채, 동생네 가족들과 계곡에서 나눠 먹었던 수박 모두, 내 가슴속 깊이 간직한 추억의 장면들이 되었다.
수박의 꽃말처럼 그날 우리는 수박 한 통으로 넉넉하고 큰마음을 나누었다.
내년에도 벌어질 즐거운 수박 잔치가 기다려진다.
- 김영희의 '수박 한 통'중에서

[수필 읽기]
수박의 계절이 돌아왔다. 여름이면 뭐니 뭐니 해도 과일의 왕은 수박이다.
수박은 90%가 수분이라서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수박으로 갈증을 해결하고, 정을 나눈다.
그날의 수박잔치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생네 가족과 함께 계곡으로 피서 가서, 개울물에 담가 놨던 수박을 잘라 각자 한 쪽씩 들고 먹던 풍경과 닮았다. 맛있는 수박으로 수분을 보충한 아이들은 튜브를 몸에 두르고, 얕은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고 서로에게 물을 튕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대구 문학기행 첫날 저녁에 우리는 수박을 잘라 먹으며 담소를 나눌 생각이었다. 그러나 모두 너무 피곤해서 다음날 먹기로 하고 그냥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바로 차에 올라타서 계획된 일정대로 다니느라 쉴 틈이 없었다.
그렇게 잊힌 듯 했던 수박이, 어느 누군가의 묘안으로 '휴게소 수박잔치'를 벌인 것이다. 깨질 새라 애지중지하며 함께 다닌 수박 한 통이, 우리의 건조한 목을 빠르게 축여 주었다. 갈증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단맛이 입안을 맴돈다. 수박 한 통은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거운 수박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면서 지체된 시간이 서럽지 않게, 깔끔하게 수박을 해결하니 마음이 가뿐해졌다. 짧은 시간 동안의 멋진 수박 잔치였다.
다시 뜨거운 여름이 시작됐다. 슈퍼에서 크고 초록이 선명한 수박 한 통을 사왔다. 여름이면 수박은 필수 과일이다. 수박은 더울 때 언제라도 바로 꺼내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에서 냉기를 가득 품고 기다리고 있다.
뉴욕의 온도가 40도가 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상의를 벗고 누워있거나 공원에 앉아있는 사람들, 몸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물을 몸에 뿌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남의 일이 아니다.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나갈 수 있을까.
우리의 자손들은 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여름철 수박 한 통 같은 속 시원한 해결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김영희 수필가, 코리아아트뉴스 칼럼니스트, 문학전문 기자
충남 공주에서 태어남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라피 작가,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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