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이경구의 "타지마할"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12]
타지마할
이경구
많은 목숨이 당신 이름으로 빛난다고
코웃음 치며 누워 있는가
2만여 명의 인부들이 동원되고
자이푸르에서 운반되어 번쩍이는
대리석 기둥에 수놓아진 사랑의 징표
지금도 그대도 변하지 않았는가
뒤에는 아무르강이 흘러 감싸고
앞에는 사암의 문을 들어오며
옷깃 여미는 사람들
구천을 헤매는 원혼의 통곡 소리
정글 뒤덮어 나무들도 따라 우는데
거대하고 수려한 곡선
별빛에 달빛에 햇빛에 반짝이는
휘황찬란한 비단돌 속에서 잠자고 있는가
권력자의 허무한 사랑의 징표
2만여 명의 손목을 잘라 바쳤는데
샤 자한, 그 지독한 사랑의 불꽃이
아직 타오르고 있는 타지마할
꺼진 불꽃으로 일으킨 사랑의 전설
돌덩이에 눌려 신음하는구나
ㅡ『딱, 그만큼만』(세종문화사, 2025)

[해설] 이 아름다운 건축물이 만들어지자면
타지마할은 멀리에서 보나 가까이 가서 보나 ‘아름답다’란 말 외에 다른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할 수 없는 완벽한 건축물이다. 인도 아그라에 위치한 무굴 제국의 대표적 건축물인데 만들어진 과정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자신의 총애했던 부인 뭄타즈 마할로 알려진 아르주망 바누 베굼을 기리기 위하여 부하들에게 무덤 건축을 명하였다. 1632년이었다. 왕비는 이미 죽고 없는데 그녀를 기리고 그녀의 넋을 달랜다는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내세워 우스타드 아마드 로하리라는 건설부 장관(물론 그때는 다른 직함이었을 것이다)에게 왕비의 무덤 겸 사원을 만들라고 명하였다.
뭄타즈 마할이 죽은 지 6개월 후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완공에 22년이 걸렸는데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전국 각지에서 불러와 일을 시켰다. 임금을 제대로 주었을까? 영양식을 충분히 공급했을까? 휴식시간을 충분히 주었을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했을까? 그랬을 턱이 없다. 노예나 마찬가지로 대우했을 테고 공사 중 사망자가 꽤 나왔을 것이다.
이경구 시인은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별빛에 달빛에 햇빛에 반짝이는/ 휘황찬란한 비단돌”이라고 했을 때도 비단돌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묘사하지 않고 별빛에 달빛에 햇빛에 반짝인다고 했다. 시인은 시종일관 타지마할 건설 과정에서의 인권유린과 폭력에 대한 생각을 배제하지 않았다. “구천을 헤매는 원혼의 통곡 소리”는 이 시를 어떤 의도로 쓰게 되었는지 확실히 말해주는 행이다.
특히 더 기막힌 노릇인 것이, “권력자의 허무한 사랑의 징표” 만들기에 2만 명이 넘는 청장년이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농사를 지어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공사현장에 오게 해서 노동자로 나를 쓰고 있다. 고향에 나를 언제 보내줄지 모르겠다. 제1차 공사가 끝나면 보내주겠다고 하지만 기술자인 나를 (혹은 숙련공인 나를) 정말 보내줄까?
타지마할을 보고 와서 시를 쓴다면 예찬 일변도이겠지만 이경구 시인은 “꺼진 불꽃으로 일으킨 사랑의 전설”이 “돌덩이에 눌려 신음”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 돌덩이를 치워야 한다고 말한다. 너희들 사랑이 그만큼 위대한 것이었느냐, 너희들 사랑을 왜 우리가 책임지고 목숨을 걸고 해결해야 하는가. 볼멘소리로 외쳐 묻는다.
[이경구 시인]
2004년 월간 《문학세계》로 등단. 2005년 중랑 사이버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서울중랑문인협회 8대 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집 『꽃을 키우는 남자』『딱, 그만큼만』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