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76] 승한 스님의 "호상"
호상
승한 스님
신발들이 얼크러져 있다
신발 위에 신발이 있고
신발 밑에 신발이 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도무지 내 신발을 못 찾겠다
오늘은 호상(好喪)
상주도 문상객도
주검의 안부는 묻지 않는다
형식적인 인사와
형식적인 꽃과
형식적인 향과
형식적인 소주와
형식적인 과일과
형식적인 촛불과
형식적인 돈봉투와
오늘의 주검 형태와
주검의 내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죽으려면 잘 죽어야 한다
오늘의 주검처럼
기쁘게 죽어야 한다
얼크러진 신발들이 웃고 있다
아가리를 벌린 채 끼득끼득하고 있다
저 속에 주검의 신발도 있으리라
내 신발도 신발을 뒤집어쓰고 있으리라
오늘은, 퍽, 가볍다
죽음이
주검이
—『응시와 가장 가까운 곳』(모악, 2025)

[해설]
메멘토 모리? 삶을 생각하지 않고?
작년과 올해, 그달에 반드시 한 번은 꼭 상갓집이나 예식장에 갔다. 언젠가는 같은 날 낮에는 예식장에, 저녁에는 종합병원 영안실에 가서 자정 즈음에 귀가했다. 결혼식장에 가서는 박수를 열심히 치고, 약간 과식한다. 장례식장에 가서 조문한 뒤에 육개장, 즉 짐승의 살을 먹으면 인간의 관혼상제ㆍ생로병사ㆍ희로애락ㆍ생자필멸ㆍ회자정리 등 한자성어가 뇌리를 스쳐 가고, 나 자신이 세상을 하직한 이후의 며칠이 어떨지 상상해보게 된다.
이진영 시인은 불가에 귀의하면서 법명 승한을, 법호 효흠을 갖게 되었다. 어릴 때 출가한 것이 아니어서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머리만 깎으면 스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수련의 과정을 잘 거쳤기에 스님이 되었을 터, 불도를 닦으면서도 시를 계속 썼다.
스님이 되고 나서 낸 시집이 『그리운 173』과 『응시와 가장 가까운 곳』이다. 스님이 쓴 시라면 세상사에 도통한 듯한, 혹은 뭔가를 깨달은 듯한 시를 쓰지 않을까 예상되는데 승한 스님의 2권 시집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고뇌에 찬 인간의 부르짖음이나 신음을 방불케 한다.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일 텐데, 생과 사의 문제는 완전히 초월했을 텐데, 어찌하여 이렇게 인간의 죽음을 가슴 아파하는지 모르겠다.
승한 스님은 종합병원 영안실에 와서 혀를 차고 있다. 수많은 화환이 도열할지라도, 엄청나게 많은 조의금이 들어올지라도, 아무리 많은 문상객이 줄을 이을지라도,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떻게 죽느냐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떻게 사느냐일진대 우리는 ‘삶의 질’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이제 막 죽은 자의 ‘인품’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일까? 그의 인생행로를 더듬어보고 그것을 내 삶의 지향점이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터인데 과연 그럴까? 아마도 스님은 미지의 신자들에게 일일이 설법할 수 없겠기에 이 시를 쓴 것이 아니랴. 언젠가 찾아올 너 자신의 임종을 생각해보라. 잘난 체할 것 하나도 없다. 호상이어서 그런지 상주(喪主)도 문상객도 주검의 안부를 묻지 않는다.
우리 사후에도 누군가는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고, 형식적인 화환을 보내고, 형식적인 꽃과 향과 소주와 과일과 촛불과 돈봉투가……. 내가 죽을 때는 편안히 갈까, 고통을 오래 겪다 갈까 스스로도 관심사다. 이 시에서 신발은 아주 중요한 사물이다. 초빙교수로 중대 문창과에서 20년 동안 재직하다 돌아가신 구상 교수님의 장례식장이 바로 그랬었다. 신발이 뒤엉켜 자기 것 찾는 것에 시간이 걸렸었다. 어떻게 죽느냐는 어떻게 사느냐와 동전의 앞, 뒷면 꼴이다. 눈앞에 닥치지 않은 죽음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승한 스님은 바로 그것을 이 시로 설법하고 있다.
[승한 스님]
중앙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에서 동양철학과 불교철학을 공부하였다. 19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수렵도』『퍽 환한 하늘』『아무도 너의 깊이를 모른다』 등과 산문집으로 『나를 치유하는 산사기행』『스님의 자녀수업』『네 마음을 들어줘』『좋아 좋아』 등이 있다. <한국불교신문사> 주필을 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