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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향기] 내 사랑 자작나무 _ 허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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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향기] 내 사랑 자작나무 _ 허상문

수필가 김영희 기자
입력

    내 사랑 자작나무 /허상문 
 

백원선 화백의 한지 꼴라쥬 작품,  마치 자작나무 숲을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사진 : 백원선 화백  제공]

    자작나무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엄숙하고 비장하다.


세상에서 가장 넓고 깊다는 바이칼 호수에서 무녕의 소리는 사라지고 '자작자작'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가 이방인의 영혼을 달래주었다... 바이칼에 머무는 내내 나는 왜 세상의 "흰 바람벽"이 되어 "더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백석) 살아오지 못했던가... 그날 이후, 내 가슴속에는 자작나무에 대한 은밀한 사랑이 자라고 있었다. 한계령을 굽이 돌고 내린천을 건너 찾아간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에서 만난 자작나무에서 떠나버린 첫사랑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래서일까. 자작나무 숲을 내딛는 출발점에서는 항상 일종의 설렘과 함께 순결한 아침의 햇살처럼 첫 기억들이 가슴속으로 밀려 올라왔다... 
 

    자작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은 눈 내리는 겨울날이 가장 적당하다... 흰 눈 속에서 새하얀 나신裸身을 드러내고 서있는 모습은 더 당당하고 위엄있게 보인다... 

    여윈 겨울에 툭툭 마른 잎이 떨어지는 소리, 자작나무는 제 가슴을 한껏 열어 한겨울에 흩날리는 쓸쓸하고 외로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쓸쓸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눈과 함께 떨어지는 마른 잎은 이 지상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가른 생으로의 망명을 꿈꾸며 추락한다. 순결하고 고요한 품속에 안기기 위해 숲 속에 들어서면 누구나 자작나무가 된다... 겨울로 갈수록 수피가 하얗다 못해 은빛을 발하는 나무. 자작나무 꽃말은 '당신을 기다립니다'이다. 이제 나는 누구를 기다리는가... 미명의 어둠 속에서 조금씩 밝아오는 새벽, 내 청춘의 자작나무 숲에는 아직도 축복 같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행복한 사랑은 넘쳐서 끝장나고 불행한 사랑은 모자라서 끝장난다." 릴케가 사랑한 루 살로메가 한 말이다. 이렇게 살다가 우리가 사라지고 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 시인은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정희)고 했지만, 우리에게 여백으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 


    늑대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자작나무라고 한다... 언젠가 오로라를 만나기 위해 알래스카 변방에 머물 때 들려오던 늑대의 울음소리를 잊을 수 없다... 


    번잡했던 봄 여름 가을을 기억하던 나뭇가지들도 흰 눈에 덮여서 긴 휴식을 취해본다. 그렇다. "삶이란 뭐니뭐니 해도 자작나무를 찾아가는 일. 자작나무 숲에 너와 내가 한 그루 자작나무로 서서 더 큰 자작나무 숲을 이루는 일"(안도현)인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자작나무를 껴안으며 말해 본다. 


    "친구여, 그동안 힘들게 살아왔지. 고생했어." 자작나무도 나에게 따뜻이 응답해 준다. 

    "그래, 너도 그동안 수고했어, 됐어, 그만하면 됐어!"


[수필 읽기]
 

자작나무 숲 [ 사진 : 김영희 기자 ]
자작나무 숲 [ 사진 : 김영희 기자 ]

   자작나무에 읽힌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는 작가의 그리움이 하얀 눈처럼 소복소복 쌓인다.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이 유난히 반짝여 보인다. 창백한 화선지에 먹물을 군데군데 찍어놓은 듯   한 자작나무의 모습이 흑백의 도시미를 보이기도 한다. 


      요즘은 곳곳에서 자작나무를 볼 수 있다. 


  왠지 타향에 와서 사는 사람처럼 낯설어 보이기도 하고, 가늘게 쭉쭉 뻗은 기둥이 도시의 세련     된 느낌을 들게도 한다. 


     고요한 자작나무 숲속에서 숨 한번 크게 쉬고 '자작자작'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눈이 많이 내린 날 자작나무 숲을 찾아갔다. 혹한의 추위에도 반짝이는 하얀 눈 속에서 무리를     이루어 자라고 있는 자작나무를 만났다.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과 하얗게 쌓인 눈과 자작나무와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숲에   서 들리는 것 같았다.  "너도 그동안 수고했어, 그만하면 된 거야!" 


      하늘과 맞닿을 듯이 높이 솟은 자작나무는 눈과 더 잘 어울려 보였다. 


      마치 그가 있어야 할 곳이 그곳이라고 말하는 듯. 

[편집자주: 코리아아트뉴스는 당사 칼럼이나 기사에서는 회화,사진 등은 다른 영역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게재하여 예술인들간의 상호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자 합니다.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김영희  코리아아트뉴스 칼럼니스트, 문학전문기자]  
 

김영희 수필가
김영희 수필가

충남 공주에서 태어남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라피 작가, 시서화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수상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수필가 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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