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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안윤자의 "정이 가는 사람"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안윤자의 "정이 가는 사람"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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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84]

정이 가는 사람

 

안윤자

 

순한 사람이 좋아요

잔정은 많고

말수는 적은 사람

부끄럼에 가끔은 볼이 발개지는

눈매엔 이따금 이슬이 어리고

가만히 한숨을 숨기는 그런 사람이 좋아

 

실화 하나로 열 개를 떠벌리는 사람보다

열을 품고도 티가 없는 그런 사람

 

오랜만에 만나고도

선뜻 밥값을 계산해 주는

그런 사람이 좋아

 

약은 사람은 싫어

목청 큰 사람은 딱 질색이야

 

그런 친구 만나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허전했다

열 번도 더

친구에게 밥을 사주는

그런 사람이 나는 좋아

 

—『무명 시인에게』(코드미디어, 2023)

  

오랜만에 만나고도
선뜻 밥값을 계산해 주는
그런 사람이 좋아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밥값을 내야겠다

 

  이 시에서는 실화는 實話일 것이다. 말이 많은 사람은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경우가 많다. 중언부언에 횡설수설이면 대화 나누기가 힘들다. 말수가 적고 동정심이 많고 잔정이 많은 사람을 다 좋아한다. 안윤자 시인만 이런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다 이런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것이리라. 나이를 먹으면 입을 다물고 지갑을 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이 시를 읽고 깨달은 것이 있다. 잘난 체하지 말 것이며 얌체 짓을 하지 말 것. 특히 밥값을 무조건 내야겠다. 제자를 만나서 밥값을 내가 내지 않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니, 취직한 제자가 찾아와서 스승의 날이랍시고 밥값을 낸 적이 있었다. 짜식, 속으로 내 욕을 했을 것이다. 차를 내가 안 샀다면 욕을 더 하지 않았을까? 지인을 만나러 갈 때는 근년에 낸 시집이나 평론집을 꼭 들고 간다. 차 한 잔을 얻어 마셔도 책을 사인해 주고 오면 마음이 덜 부담스럽다.

 

  비유나 상징도 없거니와 아주 솔직하고 담백해서 시 같지 않다. 하지만 나를 반성케 한다. 앞으로 내가 남을 대할 때 어떻게 태도를 취해야 할지 가르쳐준 점이 고마워서 타이핑을 해보았다. 열 번도 더 밥을 사는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열 번 다 얻어먹는 사람은?

 

  [안윤자 시인]

 

  시인이며 수필가.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고 있다. 가천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윤동주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가톨릭의대 부속 성바오로병원과 서울의료원의 의학도서실장으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했다. 평생을 도서관 안에서 책의 관리자와 생산자로 살았다. 1991년 《월간문학》으로 소설로 등단했고 2021년 《MUNPA》 신인상을 받고 시인이 되었다. 『서울의료원 30년사』『경동제약 30년사』를 집필했다. 2020년 가톨릭 평화방송, 평화신문 공모에 대상을 수상했다. 첫 장편이자 역사 평설인 『구름재의 집』을 출간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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