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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아카데미]  김강호시인의 "향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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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아카데미]  김강호시인의 "향낭"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향낭


김강호 
 

차오른 맑은 향기 쉴 새 없이 퍼내어서

빈자의 주린 가슴 넘치도록 채워 주고

먼 길을 떠나는 성자

온몸이 향낭이었다

 

지천명 들어서도 콩알만 한 향낭이 없어

한 줌 향기조차 남에게 주지 못한 나는

지천에 흐드러지게 핀 잡초도 못 되었거니

 

비울 것 다 비워서 더 비울 것 없는 날

오두막에 홀로 앉아 향낭이 되고 싶다

천 년쯤 향기가 피고

천 년쯤 눈 내리고…

향낭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프란치스코!

202542788세 나이로 선종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는 겁니다라는 어록이 뇌리 깊이 남아있다. 그가 남긴 재산은 14만원 이었다고 하니 놀랍다. 빈자(貧者)의 아버지였다.

 

테레사 수녀!

이름만으로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1910년 알바니아에서 태어나 1997년 향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녀는 평생을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가톨릭 성녀로 시성된 그녀의 삶은 단순한 봉사를 넘어 인류애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녀는 "고통받는 자들에게 닿는 순간, 우리는 신의 손길에 닿는다"고 말하며,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도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이러한 시선은 고통과 사랑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오히려 고통 속에 내재 된 사랑의 힘이었다고 본다.
 

위 시조를 쓰면서 역사적인 인식과 빈자를 위한 수녀의 삶을 향낭에 비유하기로 했다. 어느 날 드라마에서 향낭이란 단어가 흘러나왔는데 머리에 각인 되어 떠나질 않고 있다가 제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처럼 뜻하지 않은 단어나 스치는 말 한마디에도 귀 기울이는 습관이 한편의 작품을 끌어냈다. 시조의 결론은 거의 세 번째 수에 집중되었다. 첫째 수가 서론이고 둘째 수가 본론이고 셋째 수가 결론이라고 한다면, 상상력을 발휘해서 독자의 기억에 오래 각인될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향기의 주머니인 향낭이 되고 아주 오랫동안 향기를 피워내고 싶어서 상상력을 동원했다. 작품에서나 가능한 무한한 상상력이다.

 

역사를 실어 나르는 세월의 간이역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노래할 때 시조가 제격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율격으로 풀어내는 일, 시조 시인의 몫이다.

 

오두막에 홀로 앉아 향낭이 되고 싶다

천 년쯤 향기가 피고

천 년쯤 눈 내리고…

 

다음 주 월요일에는 한국의 좋은 시조로 찾아올 예정이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시인 김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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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아카데미#향낭#김강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