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52] 김강호의 “노인과 세 아들”
노인과 세 아들
김강호
아내 잃은 노인은 술독에 빠져들었고, 검은 안개 차올라 앞을 볼 수 없어서
눈물 반 고통 반으로 절망의 강 건너네
노인은 의사였고 아들 셋도 의사였는데, 아들 모두 앰뷸런스 바퀴보다 바빠서
잠시도 애비 보러 올 생각조차 못 한다네
요양원 구석 자리 어둠이 똬리 튼 날, 노인의 혀끝에서 언어가 오그라들고
답답한 가슴팍에는 더듬이만 커 올랐네
노인이 마른 몸에서 맑은 영혼 일으켜, 그믐달 빈 배 삼아 하늘 여행 가신 뒤
덩그런 눈물자리엔 국화 그늘 깊었네

위 시조는 아버지께서 요양원 계실 때 옆 침상에 계신 노인 분을 보고 썼다. 「노인과 세 아들」은 가족 서사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그 내부에는 현대 사회의 윤리적 공백과 관계의 파열이 서늘하게 도사리고 있다. 이 노인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돌봄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버려진 존재, 곧 ‘쓸모를 다한 인간’으로 환원된 현대 노년의 초상이다.
첫 수에서 노인은 “술독에 빠져들었고” “검은 안개” 속에 갇혀 있다. 이 검은 안개는 단순한 상실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단절의 이미지다. 아내의 죽음 이후, 노인은 더 이상 타자와 연결되지 못하고 자기 내부로 침잠한다. ‘절망의 강’은 삶과 죽음의 경계이자, 인간적 관계가 끊어진 자리에서 건너야 하는 고독의 강이다. 눈물과 고통이 뒤섞인 채 그 강을 건너는 모습은, 노년의 삶이 단순한 쇠락이 아니라 감정의 잔해 위를 걷는 고통의 지속임을 드러낸다.
둘째 수에서는 아이러니 극대화다. 노인과 세 아들 모두 ‘의사’라는 설정은 생명을 살리는 직업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정작 가장 가까운 생명인 아버지를 돌보지 않는 윤리적 역설을 부각했다. “앰뷸런스 바퀴보다 바빠서”라는 표현은 속도의 이미지로 현대 사회의 비정함이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질주하는 바퀴는, 동시에 한 생명을 외면하는 무정한 회전이 된다. 이때 바퀴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자본과 효율의 논리를 상징한다. 아들들의 바쁨은 변명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며, 그들의 무관심은 개인의 도덕성 결핍을 넘어 사회 전체의 병리로의 확장이다.
셋째 수에서 공간은 “요양원 구석 자리”로 축소되며, 노인의 존재 역시 점점 미세하게 소거된다. “어둠이 똬리 튼 날”이라는 표현은 시간마저 생명력을 잃고 응고된 상태를 형상화한다. 특히 “혀끝에서 언어가 오그라들고”라는 구절은, 노인이 더 이상 사회적 발화를 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언어의 상실은 곧 존재의 지워짐이다. 대신 “더듬이만 커 올랐네”라는 기이한 이미지는 인간이 아닌 곤충적 감각으로의 퇴행을 암시한다.
종장에 이르면 노인은 “그믐달 빈 배”를 타고 하늘로 떠난다. 여기서 그믐달은 소멸 직전의 존재, 혹은 다 타버린 생의 잔광을 의미한다. 빈 배는 아무도 함께하지 않는 죽음 같은 고독이며, 동시에 삶의 모든 관계가 비워진 상태를 드러낸다. 노인의 죽음은 장엄하거나 비극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거의 무심하게 처리된다. 남겨진 것은 “덩그런 눈물자리”와 “국화 그늘”뿐이다. 국화는 전통적으로 애도의 상징이지만, 여기서는 그늘로 제시됨으로써 살아 있는 이들의 무심한 형식적 애도를 비판했다.
이 작품을 통해 묻는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이들이, 왜 가장 가까운 생명을 외면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쉽게 타인의 고통을 ‘바쁨’이라는 이름으로 유예하는가.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