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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60 ] 김강호의 “볼트와 너트”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사랑을 통해 들여다본 존재론적 관계“

볼트와 너트

 

김강호

 

출생이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만나서

살아온 나선형의 내력들을 말했어

은밀한 내면과 외면 각지고 둥근 모습을

 

깊고 험한 나날들 길을 내며 오는 동안

수많은 상처들이 산맥으로 자리 잡고

그렁한 눈물 줄기는 골짜기가 되었어

 

때로는 이탈해서 달아나고 싶었지만

맞물린 가슴팍을 더 뜨겁게 조였어

금속성 언약을 품고 내일로 가는 우리

볼트와 너트 - 김강호 시인 

이 시조 「볼트와 너트」는 사물을 빌려 인간의 관계와 존재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다. 볼트와 너트는 공업적 사물이지만, 이 작품 안에서는 단순한 부속품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존재이며, 끝내 함께 시간을 견디는 운명이다. 나는 이 시를 쓰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반드시 닮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름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했다. 금속성 사물을 통해 작품으로 엮는 것은 바이스 플라이어에 이어 두 번째다.
 

첫 수의 출생이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만나서는 관계의 출발을 말한다. 볼트와 너트는 태생부터 다르다. 하나는 돌출되고 하나는 받아들이며, 하나는 외형을 드러내고 하나는 내부로 품는다. 그러나 그 다름은 결핍이 아니라 완성의 조건이다. 여기서 볼트와 너트는 인간 존재의 상징이 된다. 서로 다른 환경, 서로 다른 성격,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우연과 필연의 경계에서 만나 삶을 함께 엮어 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어지는 살아온 나선형의 내력들을 말했어에서 나선은 중요한 의미다. 직선은 효율과 속도를 상징하지만, 나선은 반복과 축적의 시간을 품는다. 인간의 삶 또한 결코 곧게 나아가지 않는다.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조금씩 깊어지고 조금씩 높아진다. 볼트의 나사산과 너트의 홈은 서로의 시간을 읽어내는 언어다. 은밀한 내면과 외면 각지고 둥근 모습을에서는 금속인 볼트와 너트가 마치 사람처럼 내면과 외면을 지닌 존재가 된다. 각진 모습은 삶이 남긴 경계와 방어이며, 둥근 모습은 관계 속에서 다듬어진 온기다. 인간 역시 타인 앞에서 매끈한 얼굴만 보여 주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각과 모서리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관계란 상대의 둥근 부분만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 각진 부분까지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담았다.

 

둘째 수에서는 삶의 흔적을 지형의 이미지로 확장하였다. “깊고 험한 나날들 길을 내며 오는 동안이라는 구절에서 시간은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간다. 이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사유를 담은 대목이다.
 

수많은 상처들이 산맥으로 자리 잡고 / 그렁한 눈물 줄기는 골짜기가 되었어에서는 상처를 지형으로 형상화하였다.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도를 만든다. 산맥은 견딤의 높이이고 골짜기는 슬픔이 지나간 자리다.

 

마지막 때로는 이탈해서 달아나고 싶었지만은 관계의 현실 표현이다. 아무리 단단한 결합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관계에는 피로가 있고, 자유를 향한 욕망도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한 인내를 미화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맞물린 가슴팍을 더 뜨겁게 조였어에서 조임은 억압이 아니라 선택이다. 서로를 향해 다시 돌아오는 결단이며, 상처 이후에 이루어지는 성숙이다.
 

마지막의 금속성 언약을 품고 내일로 가는 우리는 이 시의 핵심으로 놓았다. 금속은 차갑지만 강하다. 그러나 여기서 금속성은 무정함이 아니라 쉽게 부서지지 않는 신뢰다. 언약은 말이 아니라 함께 견뎌 낸 시간에서 완성된다. 볼트와 너트는 서로를 구속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통해 더 멀리 나아가는 존재다.

 

결국 이 작품은 사랑과 관계를 말하면서도 더 깊게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우리는 왜 타인과 연결되는가. 답은 완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채 서로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서로의 나선에 맞춰 조금씩 조이며, 상처를 산맥으로 바꾸고 눈물을 골짜기로 만들며 내일이라는 방향을 함께 견디는 것. 그것이 「볼트와 너트」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다.

김강호 시인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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