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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산의 책다락 7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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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산의 책다락 7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효산 남순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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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

1942년 『이방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낯선 인물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정신적인 공허를 경험한 당대 독자들에게 카뮈는,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 사이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민음사에서는 불문학 최고의 번역자 김화영 교수가 이십 여년 만에 원문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오늘의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한 언어로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한 원고를 ‘세계문학전집’ 266번으로 출간함으로써 『이방인』이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서평
 

1942년 『이방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낯선 인물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정신적인 공허를 경험한 당대 독자들에게 카뮈는,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 사이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민음사에서는 불문학 최고의 번역자 김화영 교수가 이십 여년 만에 원문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오늘의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한 언어로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한 원고를 ‘세계문학전집’ 266번으로 출간함으로써 『이방인』이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1913~1960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1913~1960)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 1957년에는 역대 두 번째로 어린 43세의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실존주의자로 분류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러한 평가를 거부했다.

프랑스령 알제리 태생이라는 사실에 그를 알제리 아랍계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당시 프랑스는 알제리를 단순 식민지나 명목상으로만 같은 국가에 속해 있을 뿐인 외지(外地)가 아닌 프랑스 본토의 확장된 영토로 취급했다. 그래서 프랑스 본토로부터 새로운 땅에서의 기회를 노리고 이주한 프랑스인, 이른바 피에 누아르들이 많았으며, 카뮈의 아버지나 어머니도 그 중 일부였다. 카뮈가 태어날 당시의 알제리는 그저 프랑스라는 국가의 한 지역이었고, 따라서 그는 프랑스 태생이었다.  카뮈가 알제리 태생이라는 말은, 카뮈가 사망(1960)한 후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1962)한 현재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즉, 그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저 프랑스 본토의 알제리 지방에서 나고 자랐을 뿐인 순수 프랑스인이었으며, 현재의 알제리 아랍인과는 거의 무관한 인물이다. 당연하겠지만 이슬람교를 믿지도 않았다.
 

카뮈는 아버지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사하는 바람에 어린 시절엔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모친은 남편 사후 카뮈와 형을 데리고 친정에 들어간다. 모친은 문맹에 청각 장애를 가진 하녀였고, 카뮈는 한 집에서 할머니, 어머니, 형, 외삼촌 두 명과 함께 살았다. 가난으로 중학교도 못갈 뻔 했는데 초등학교 담임이던 루이 제르맹이라는 교사가 집으로 모친과 할머니를 찾아와 진학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매일 카뮈를 붙잡고 교육시켜 중학교를 장학금을 받고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카뮈는 1957년 노벨상 수상 후 연설문인 '스웨덴 연설'을 '어머니 다음으로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하며 제르맹에게 헌사한다.

그리고 카뮈는 고등학교에서 평생의 스승 장 그르니에 (Jean Grenier)를 만난다. 그르니에는 당시 생계를 위해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고 중년 이후에는 소르본 대학교의 미학, 예술학 교수가 된 철학자, 작가이다. 그르니에의 제안으로 카뮈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두 사제는 카뮈가 죽기 전까지 3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편지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 고백이 넘쳐난다.
 

카뮈는 학생 시절에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고질병인 결핵이 방해가 되어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자동차 수리공 및 신문사 인턴 기자, 가정교사 같은 여러 일로 벌어먹으면서 철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22살에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여 좌익 운동을 했으며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지배에 부정적인 글을 남기기도 했고, 베르베르족으로 흔히 알려진 이마지겐 부족에 대한 프랑스의 억압과 더불어 아랍계들의 차별도 고발했다. 그 때문에 정부의 압력으로 일하던 신문사에서 해고당하자 이에 언론인 노조가 반발하면서 시위를 벌여 결국 복직한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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