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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해설] 정지윤의 "듣고 싶은 말"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동시 해설] 정지윤의 "듣고 싶은 말"

이승하 시인
입력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72]

듣고 싶은 말

 

정지윤

 

밤늦게 학원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지친 발걸음 무거워질 때

가로등 환한 불빛 비춰 옵니다

 

‘괜찮아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파이팅!’

 

캄캄한 바닥에

따뜻한 말들이 지나가고

 

‘오늘도 수고 많았어!

우리 딸 사랑해♥’

 

엄마 대신 가로등이 전해주는

다정한 메시지

 

엄마도 퇴근할 때

이 글 보면 좋을 텐데

 

할머니가 늘 하던 말

지금도 듣고 싶은 말

 

―『전달의 기술』(출판그룹 상상, 2023) 

듣고 싶은 말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외로운 아이가 듣고 싶은 말

 

  따뜻하고 밝은 것은 가로등뿐이다. 아이는 늘 외롭다. 집에 가면 할머니만 계시기 때문이다. 아빠는 엄마랑 헤어지고 같이 살지 않는 모양이다. 엄마는 돈을 벌어 오기 위해 나가서 일하는데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늦게 들어가도 집에 오지 않은 상태라 아이는 엄마를 기다린다. 정지윤의 이 동시가 보여주는 어느 집의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런데 이런 집이 꽤 많지 않을까?

 

  동시의 제3연은 아이의 마음속 말이다. 엄마에게 이 말을 하고 싶어도 엄마는 들어줄 수 없다. 매일 밤늦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제5연의 말은 엄마한테서 듣고 싶은 말인데 엄마는 아이에게 이 말을 좀처럼 해주지 않는다. 따뜻한 한마디 말도 해주지 않을 만큼 바쁘고 지쳐 있기 때문일까.

 

  아이는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을 노트에 적어놓았다. 엄마가 봐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엄마 대신 가로등이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우리 딸 사랑해♥’ 같은 따뜻한 격려는 스마트폰으로도 할 수 있다. 엄마는 삶에 지쳐 여유가 도통 없는 것 같다. 마음이 삭막해졌다.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 않는 이 아이의 엄마가 밉다.

 

  [정지윤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수료했다. 2014년 동시 「소금」 외 4편으로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다. 동시집 『어쩌면 정말 새일지도 몰라요』, 시집 『나는 뉴스보다 더 편파적이다』, 시조집 『참치캔 의족』 등이 있다. 전태일 문학상, 김만중문학상, 한국안데르센상 등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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