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헌의 음악단상 5] 모차르트의 협주곡, 표절인가, 편곡인가
지식재산권, 흔히 카피라이트(Copyright) 로 대표되는 권리이다. 단순히 이야기하면, 내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온전히 내 것이란 뜻이며, 이를 누군가 단순 복제 사용, 혹은 차용하여 2차창작물을 제작할 시, 카피라이트 권리자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무형의 상념들이 자산으로 인식된 것은 생각보다 꽤 오랜 역사가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등장한 것만 해도 벌써 6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니 말이다. 이전에도 원판에 잉크를 발라 용지에 찍어내는 방식의 인쇄술은 발견된 사례들이 있으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아이디어가 곧 돈이다] 라는 카피라이트의 탄생을 끌어낸 것에 의의가 있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무형의 자산, 음악은 어떨까. 구텐베르크보다 300년 뒤에 살던 모차르트의 시대엔 음악의 카피라이트가 보장되었을까?
잠시 음악가들의 일상을 보자. 모차르트의 시대 음악가들의 군상은 꽤 다양했지만, 대표적으로 한 가지만 꼽자면, 권력가 집안의 하인으로 일하는 것, 지금으로 말하면 집주인이 음악 듣고 싶을 때 유튜브를 연동하여 트는 블루투스 스피커 같은 역할이 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작곡가들은 집주인의 취향에 기반한 음악을 최우선으로 만들었다. (물론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긴 했지만, 당연히 후순위에 머물렀다) 우리도 길을 오가며, 공부하며, 잠자기 전 음악을 듣듯이, 당시에도 삶의 부분 부분마다 음악이 필요했고, 이들은 식사용, 티타임용, 파티용, 집안 행사용, 자장가용, 그냥 집주인이 듣고 싶을 때 등등 시시때때로 음악을 소비했다. 당시엔 TV, 유튜브 등의 즐길 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더 많이, 더 자주 필요했으리라. 이뿐인가. 주인집 자녀들의 음악교육 및 집주인이 실력 있는 아마추어 연주자일 시 연주를 위한 곡도 만드는 등, 이 시기 작곡가들은 끊임없이 소비되는 음악을 그야말로 주야장천 만들어야 했던, 이를테면 음악 공장 근로자로서의 바쁜 일상을 살았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헤스테르하지 가문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하이든, 그리고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신동 모차르트가 있다.

우리는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은연중 비슷한 연배로 생각하나, 사실 둘은 20살 이상의 나이 차이가 있고, 그만큼 살아온 환경 또한 매우 달랐다. 1732년생 하이든은 1760년부터 1790년대까지, 무려 30년의 세월을 에스테르하지 집안에서 근무하고 퇴직금까지 받았던 장기근속 근로자였지만, 1756년생 모차르트는 음악의 신동 타이틀을 얻은 어린 시절부터, 교회의 음악가를 핵심으로 활동했던 잘츠부르크 시기, 스스로 독립하여 프리랜서로 활동한 마지막 빈 시기까지, 다사다난한 음악가 인생을 살았고, 심지어 하이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하이든의 절반이 채 안 되는 35년의 인생 동안 모차르트가 만든 음악들이 지금은 하이든의 음악보다 훨씬 유명해진 것을 보고 있자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어느 이야기가 참으로 와닿게 된다. 이 중 모차르트의 플루트 협주곡 2번을 자세히 살펴보자.
이 곡이 쓰인 시기인 1777년에서 1778년, 모차르트는 고향에 대한 애정과, 고용주 교회 대주교에 대한 증오 둘 다를 품은 채 새로운 곳에서의 활동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곳저곳 오가며 구직활동을 하고 있던 그에게, 당시 원탑으로 칭송이 자자한 만하임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꽤 충격을 다가온 것 같다. 없는 살림에 5개월이나 머무른 것을 보면 말이다. 특히 플루트 연주자 요한 밥티스트 벤들링의 연주에 큰 감명을 받았던 모차르트에게, 무려 돈을 받고 음악을 만들 기회가 온다. 그와 똑같이 플루트 연주에 감명받은 모 후원인으로부터 이 플루트 협주곡 2번을 포함한 5개의 곡을 써주는 대가로 1천 굴덴의 돈을 받기로 한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금액이 현 가치로 1십만 유로, 한화로는 1억이 넘는 액수라 하니, 모차르트가 이 제안을 덥썩 받아들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지금도 그렇듯이, 구직활동엔 늘 변수가 따르기 마련. 모차르트 또한 이 곡 작업에만 몰두할 환경은 아니었기에 한가지 묘수를 내게 되는데, 바로 1777년 그해에 만든 따끈따끈한 신작인 오보에 협주곡 C장조를 기반으로 곡을 편곡하는 것이었다. C장조였던 조성을 당시 플루트에 더 어울리는 조성인 D장조로 한키 올리고, 기존 오보에에 적합했던 선율을 플루트에 맞게 가다듬는 등, 모차르트는 나름의 정성을 담아 플루트 협주곡 2번을 편곡하여 5곡 전체를 의뢰인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의뢰인의 반응은 다소 미적지근했던 거 같다. 모차르트는 약속된 1천 굴덴이 아닌 964굴덴을 받았으니 말이다. 의뢰인은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에서 공개한 오보에 협주곡에 대한 존재를 이미 알고있었고, 이를 빌미로 플루트 협주곡의 퀄리티를 다소 절하하여 깎은 금액으로 거래를 마쳐버린다. 깎여버린 36굴덴이 다소 아쉽긴 하겠으나, 어쩌랴. 아마 모차르트 또한 자신의 작업 방식이 완전한 창작과는 조금 다르다는것을 인정하여 순순히 이 금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편곡과 작곡은 사실 엄연히 다른 영역이니 말이다.

관련하여 현재의 시선은 어떨까. 직접적이진 않지만, 저작권 신탁단체들의 정책을 볼 때 다소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자신의 곡이어도, 2차 창작이 들어갈 시 신탁을 담당한 협회에 2차 창작에 해당하는 별도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급해야 함을 명시한 것이다. 이는 오리지널 창작과 이를 기반한 2차 창작을 각기 다른 고유한 행위로 본 것이며, 이에 대한 권리도 각각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시점으로 모차르트의 곡 의뢰인 생각을 정리해 보자면 ‘내가 의뢰한 액수만큼 모차르트는 온전히 이행한 것이 아니니, 그에 합당한 액수만을 줘야겠다’라는 생각을 한 셈이다. 물론 차감한 만큼의 액수는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에는 의문이 따르지만, 이로써 글의 서두에서 제시했던 의문은 어느 정도 해소된것 같다. 복제된 음악들에 대한 모든 권리를 보장하는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원곡과 편곡 간의 차이 인정, 이에 대한 금전적 차이의 인정, 또 이러한 거래관계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사회적 분위기까지. 모차르트 시대에도 어느 정도 카피라이트에 대한 기준이 존재했던 것으로 결론을 지어보고자 한다.
사실, 카피라이트같은 복잡한 이야기는 차치해두고서라도,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 C장조와 플루트 협주곡 2번 모두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오보에와 플루트의 음색 적 차이, 그리고 각 악기에 맞게 다듬어진 멜로디를 듣는 것만으로도 두 곡은 그 자체로서 존재의 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음악이라 할 만하다. 특히나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협주곡에 아주 많이 편중된 협주곡 레퍼토리들을 떠올리자면, 모차르트의 이 두 협주곡은 놓쳐서는 안 될 귀중한 플레이리스트가 될 것이다.
지식재산권은 귀중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모두 이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해당 권리자의 재산을 다 존중하고 보호한다. 이는 구텐베르크로부터 시작된 인쇄술로 본격화했으며, 이후 모차르트 시대에 이르러서는 흘러가 버리는 기억의 산물인 음악에서도 이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이어지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겐 더욱 익숙해져 버린 음악. 집, 회사, 카페, 거리 등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이 무형의 예술에도 저작자들의 권리가 있음을 한 번쯤 떠올려보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