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향기] 로댕과 워드 프로세서 - 이기식
로댕과 워드 프로세서
이기식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는 게 있다. 컴퓨터 건반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의 자세를 보는 것 같다. 프랑스 조각가인 오귀스트 로댕이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지옥에 던져진 인간들의 고통을 내려다보면서 사색하는 '시인'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라 한다. 글 쓰는 사람의 정신적 자세일 수도 있다.

1974년, 일본에 유학을 가게 됐다. 지도교수와 면담하던 중, 연구실에 갓 들여온 영문 워드 프로세서(이하 '워드')로 연구 논문을 작성해보라고 추천하셨다. 실은 내 글씨가 워낙 형편없어 일찌감치 타자기 신세를 지고 있는 터였다. 쳐야 할 내용이 긴 경우, 몇 줄의 문장을 새로 넣거나 빼려 해도 앞뒤, 서너 페이지는 다시 쳐야만 했다. 워드를 쓰니까 단어나 문장을 마음 놓고 고치거나, 넣고 빼는 일이 자유자재였다. 실컷 정리를 한 뒤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인쇄하면 된다. 사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한 후, 일본인 동료들을 가르치는 것도 흐뭇했고, 귀국하면 빨리 한글 워드를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귀국 후, KIST에서 국내 최초의 워드를 선보였다. 1980년이라 'WORD80'이라고 명명하였고, 곧이어 컴퓨터회사를 통하여 '명필'이라는 이름으로 제품화하였다. 이 제품은 1982~2001년 사이에 독립기념관에 전시되기도 하였다. 이후, 컴퓨터 시장은 가히 워드의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2000년대에 와서는, 50여 종류의 제품이 속속 시장에 발표되었다. 예상외의 반응이었다.
지금까지 붓을 비롯한 펜, 연필과 같은 필기도구는 작가 신체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워드를 사용하면서부터는 도구와 손이 헤어지게 되었다. 손으로 직접 쓸 때보다 리듬감이 사라질 뿐 아니라 글씨도 종이가 아닌, 엉뚱한 화면에 나타나기 때문에 거리감마저 느낀다고 했다.
반면에 힘들여서 쓰는 대신, 손가락으로 가볍게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면 머리의 회전이 잘돼, 써야 할 단어나 말들이 술술 나온다고 한다. 심지어 쾌감까지 느낀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구가 작가들의 감정, 나아가서는 창의성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니체도 타자기를 능숙하게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글을 쓰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우리의 사고를 바꾸기도 한다' 라고 했다.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워드로 글을 쓰면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 문체보다는 프루스트나 조이스와 같은, 내면 의식의 흐름을 나타내는 현대적 문체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작가의 사고 속도가 원활하고 빠르다 보니 빠른 인간의 의식을 따라잡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도구가 바뀌면 글을 쓰는 태도나 마음가짐이 근본적으로 달라질까? 아닌 것 같다. 도구일 뿐이다. 처음엔 다소 낯설어하다가 조금 익숙해지면 새것에 어렵지 않게 적응하거나 더 좋아하게 된다. 워드도 마찬가지다. 과도기가 지나면 사유의 속도와 건반 치는 속도는 서로 조율이 되고 타협이 되어 오히려 향상된 리듬, 패턴을 찾아낼 것이다. 자기 완결성이 있다.
건반을 두드리는 것은 워드나 피아노와 같다. 음악가나 연주가를 매도할 의도는 전혀 없다. 워드 사용을 건반 예술의 반열에 올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피아노 건반으로 악성樂聖이 태어나듯이, 워드를 쓰는 시성詩聖이나 문호文豪도 곧 나타날 날이 머지않다고 본다. 지금도 몽블랑 만년필을 애용하는 문필가가 많고, 또 창의적인 글을 많이 생산해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사회환경은 이미 워드 사용이 기본으로 바뀌는 중이다.
워드는 스마트폰과 더불어 지적생산의 일대 혁명이라고도 한다. 워드에도 AI기술이 추가되어 창의성까지 갖출 것이라고 한다. 상대적인 이야기다. 최신, 최고의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말해도 무리는 없으나, 신비한 언어나 사유로 글을 쓰는 시인들에게는 아직은 힘든 이야기다.
논문을 작성할 때, 볼셀렉트릭 타자기를 두드리면, 손가락에 반응하는 건반의 중량감, 그리고 글자가 찍힐 때의 경쾌한 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쾌감인 모양이다. 지금까지 별생각 없이 싼 가격의 건반을 써왔는데 안 되겠다. 신경을 써 좀 더 나은 것으로 바꿔야겠다. 그러면 자연히 워드가 나를 신들린 사람처럼 글을 쓰게 해줄지도 모른다.

[심향 단상]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오귀스트 로댕이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지옥에 던져진 인간들의 고통을 내려다보면서 사색하는 '시인'의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화자는 그 조각의 모습이 글쓰는 사람의 정신적 자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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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1974년 이전부터 타자기를 사용하였고, 일본 유학 중에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영문 워 드 프로세서(워드)로 연구 논문을 작성하며 워드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귀국 후, 국내 최초의 워드를 선보이며 1980년에 'WORD80'이라고 명명, 곧 '명필'이라는 이름으로 컴퓨터회사를 통해 제품화하였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니체는 타자기를 능숙하게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글을 쓰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우리의 사고를 바꾸기도 한다' 라고 하였고,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워드로 글을 쓰면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 문체보다는 프루스트나 조이스와 같은, 내면 의식의 흐름을 나타내는 현대적 문체에 가까워진다고 하였습니다. 화자는 작가의 사고 속도가 원활하고 빠르다 보니 빠른 인간의 의식을 따라잡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워드에 AI기술이 추가되어 창의성까지 갖추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척 궁금합니다.
컴퓨터와 워드의 등장으로 예전처럼 원고지에 글을 쓰지 않아서 참 다행입니다. 작가들 중에는 글을 종이에 먼저 쓴 후 워드로 옮기는 경우와 종이에 쓰지 않고 처음부터 바로 워드로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저도 옛날에 타자기로 서류를 작성해 봤지만, 제 경우는 글을 쓸 때 먼저 생각나는 제목과 그에 따라 떠오르는 생각들을 공책에 볼펜이나 연필(요즘)로 쓰고, 어느 정도 분량의 글을 쓰면 워드로 옮겨 놓고 읽으며 내용을 더 넣거나 빼기도 하면서 수정하고 글을 완성, 저장합니다.
제가 아직 워드 작업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어서 일까요? 종이에 써 놓은 것은 없어지지 않지만 처음부터 워드로 작업하다가 글 길을 잘못 들면 다 지워야 되니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키보드 자판을 잘못 눌렀다가 내용이 싹 다 지워질까 봐 걱정도 되고, 또 생각이 일률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이런 저런 생각이 한꺼번에 일어나면 글의 연결이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컴퓨터와 워드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많은 것이 불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만년필과 연필의 사용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초등 저학년의 경우를 제외하면 연필보다 샤프 펜슬을 많이 사용하여 연필깎기가 필요 없어졌으며, 만년필 사용이 드물어 잉크사용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만년필과 연필 대신 샤프 펜슬과 볼펜, 싸인펜과 네임펜, 형광펜 등을 많이 사용합니다. 학교 앞에 문방구가 많이 없어져서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요즘은 '다이소'라는 점포에서 문구용품이며 각종 물건들을 판매하여 '만물상'이 되었고, 문방구와 많은 전문용품 판매점이 사라져 그나마 '다이소'에 가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이소가 생기면서 그 많던 상점들이 차츰 없어진 것이지요. 다이소가 저렴한 백화점 같습니다.
공장들은 물건을 다이소에 보내고 사람들은 다이소에 가서 이런저런 필요한 것들을 한꺼번에 사곤 합니다. 그러면서 다이소 쇼핑을 즐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많은 것을 바구니에 담을 수 있으니 부담이 줄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물건을 고르면서 다른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 가격에 팔아서 공장들이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박리다매겠지만요. 그리고 그 많은 가게들이 없어진 만큼 서민들의 삶이 더 어려워진 것은 아닌가 생각되어 가슴 한편이 싸아합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야 한다면, 워드로 친 편지보다 손 글씨로 쓴 편지가 마음을 전달하는데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워드로 작성하여 인쇄된 편지는 정이 느껴지지 않아 사무적인 느낌이나 너무 이성적이고 냉정함이 묻어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손 글씨로 써서 보낸 편지는 그 사람이 글을 쓸 때의 떨림이나 느낌,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고, 글씨체로 보낸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그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핸드폰에 문자와 카톡 기능이 있어서 자신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을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되니 소통이 더 잘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관계가 더 밀착되어 있다고도 느껴집니다.
과연 글 쓰는 사람들은 어떤 방식을 선호하고 많이 사용하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제가 이 시대(AI시대)에 중심에 똑바로 서 있는지, 적응하지 못하고 변두리에 서 있는 건 아닌지.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또 그 이점은 무엇인가요?
편리한 기계들로 가까워졌는데 더 외로운 시대!
기계가 발달함에 따라 기계를 더 가까이 하면서, 사람이 기계와 가까워지고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더 멀어졌을까요?
아무튼 우리 길을 잃지 말고 혼란한 이 시대에 길을 잘 찾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글로써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보고, 주위를 좀 더 살피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워드로든 손글씨로든요.
김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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