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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39] 이효의 "삼각김밥 번호"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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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김밥 번호

 

이효

 

수저와 수저 사이의 기다림은

독거노인의 긴 한숨

 

현관문 열어 놓고

이봐 젊은이, 날 좀 앉혀주게나

 

뼈만 남은 휠체어 바퀴를 보며

슬금슬금 사라지는 그림자들

 

뒤척이던 바퀴가 편의점 가는 날

삼각김밥 하나, 풀지 못하는 남자

 

하얀 밥과 김 따로, 내 자식들 같다

남자의 일회용 눈물이 쏟아진다

 

검정 모서리 씹는 서녘의 한 입

쪼그리고 앉은 시간이 중얼거린다

 

이젠, 삼각김밥마저 을큰하다

 

―『장미는 고양이다』(도서출판 책나라, 2024)  

삼각김밥 번호 _ 이효 시인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독거노인을 돌보는 이들

 

  “검정 모서리 씹는 서녘의 한 입/ 쪼그리고 앉은 시간이 중얼거린다

절묘한 구절이다. 삼각김밥 하나가 저녁식사가 되는 이가 있다. 편의점까지 가지도 못해 휠체어를 밀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이 세상에는 극한상황에 놓인 독거노인이 참 많다. 이효 시인의 이 시를 읽고 무의탁 노인들에게 도시락 드리는 모임에 잠시 참여했던 일이 생각났다. 시간강사 시절이었으니 90년대였다. 시에는 휠체어로 이동해야 하는 독거노인이 한 젊은이의 도움으로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을 사 먹는 장면이 펼쳐진다. “하얀 밥과 김 따로/ 내 자식들 같다란 구절이 보이는데 대체로 이들 노인은 자식이 있지만 찾아오지 않으니 버려진 셈이다. 시에 그려진 독거노인의 딱한 처지가 코를 시큰하게 한다. 대한민국에 1인가족이 40%에 육박한다는데 그중 독거노인이 10%는 될 것이다.

 

  돌봐주는 가족도, 관심 가져주는 이웃도 없는 노인이 산동네 허름한 집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연로한 데다 다들 한 가지 이상의 지병이 있는 탓에 생계지원 취로사업에도 나갈 수 없어 라면이나 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노인분들.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구호양곡마저 없었더라면 생명을 부지할 수도 없는, ‘버려진 존재들이다. 신경통, 류머티즘, 수전증, 해소병 등의 고통을 진정시킬 진통제를 살 수 없는 분들. 대낮인데도 몇 분은 술에 취해 있었다. 밥 대신 들이켠 술이 죽음을 재촉할지라도 자기를 팽개친 가족에 대한 원망과, 이렇게 소외된 채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절망감을 달리 어떻게 달랠 수 없었던 것이리라. 식사조차 제대로 못한 채 그저 질긴 목숨한 가닥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매주 한 끼라도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긴 이가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어머니인데 꽃가게까지 운영하느라 여간 분주하지 않았다. 전시회다 꽃꽂이 강습이다 무척 바빴지만 그이는 3년 남짓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 15명이 모임을 갖고 생활할 수 있도록 전셋집을 마련해주고 놀이 시설도 제공했다. 장애인들 가운데는 나면서부터 도움을 받는 데 익숙해져 묘한 이기심을 가진 이들도 있었고 자기들한테 잠시라도 소홀히 대하면 섭섭해하는 이도 있었다. 무척 힘들었다. 장애인들의 자활을 돕던 목사님마저 지방에 있는 교회로 떠나자 그분은 다른 일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무의탁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보라매공원 후문 근처에 서울시립 남부노인종합복지관이 있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이곳으로 찾아오는 결식노인들에게 무료로 점심이 제공되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로사리오평화의 모후등 상도동 천주교회의 여러 모임에서는 결식노인들의 식사를 위해 오래전부터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식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산동네에 살거나 병으로 거동이 불편해 노인복지관을 이용할 수 없는 무의탁 노인이 그 무렵 서울 남부 지역에만도 5천 명이 넘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그분은 몇 사람들에게라도 도시락을 갖다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에 복지관에 와 기쁜샘이라 이름 붙인 100여 개의 도시락을 싸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니 꽃꽂이 모임인 정현회의 회원 일부와 노인 자원봉사대의 10여 명이었다. 소문이 나니까 온정의 손길을 보내주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가장 많은 도움을 주던 삼호물산이 그 얼마 뒤 부도가 나 은행관리로 넘어가는 바람에 어묵과 닭고기, 봉투 등의 지원이 끊기게 되어 모두 걱정을 했다. 노인분들은 국물이 없으면 드시기가 무척 힘들었다. 매일 달걀과 귤 하나는 꼭 드셔야 한다는데 그것을 갖다 줄 사람이 없는 게 문제였다. 도시락 배달부가 필요했다.

 

  도시락을 싸는 회원들이 복지관에 나오는 것은 오후 1시쯤이지만 찬거리를 사고 기증하는 식품을 모으러 다니려면 아침 일고여덟 시에는 집에서 나서야 했다. 오후 2시부터 복지관에서 제공한 사랑의 쌀로 밥을 짓고 반찬을 준비해 도시락을 싸면 오후 4시다. 봉천5, 신대방동, 중계동 등으로 자원봉사자 도시락 배달부들이 차로 도시락을 돌렸다. 이들 동네는 동회 계단 입구에서 나눠주기도 하고 차로 돌릴 수도 있어 큰 어려움이 없지만 가파른 산동네인 신림7동은 차로 돌릴 수가 없어 배달부들이 직접 들고 배달했다. 번지도 적혀 있지 않은 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산동네 비탈길을 올라가면 겨울에도 땀이 났다. 집 찾기도 어려웠다.

 

  도시락 수를 늘리고 싶었지만 큰 후원자가 없어져 그렇게 하기 어렵게 되었고, 1주일에 목요일밖에 못 나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노인분들이 갖다 드린 도시락을 두고두고 드셔서 제일 걱정이 되었다. 겨울에는 며칠씩 두어도 음식이 변하지 않지만 다른 계절에 그랬다가는 배탈이 나기 십상이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는 분들도 있었고 우리가 자식보다 낫다는 분들도 있었다. 전보다 아픈 게 덜하다는 말을 들을 때 제일 큰 기쁨을 느꼈다.

 

  신림7동 산동네 일대를 돌면서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맹인 할아버지는 자기와 자식들을 버리고 달아난 부인이 원망스러워 막걸리에 취해 있었다. 앞으로는 제발 술 드시지 말라는 당부에는 속이 뒤집혀서….”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세수를 여러 날 안 한 얼굴로 잘 먹겠습니다.”를 연발하는 한 할머니는 치아가 하나도 없는 듯했다. 류머티즘으로 누워 지내는 할머니 한 분은 썩는 냄새가 나는 어두운 골방에서 누운 채로 누군가가 준 떡을 씹고 있었다. 이제 곧 이 나라는 선거전에 돌입한다. 자화자찬이 난무할 텐데, 인공지능이 판을 치는 첨단 과학문명의 시대에 이토록 비참하게 목숨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을 것이다. 비탈길을 숨을 헐떡이며 걸어 올라갔던 90년대 상황을 돌이켜보았는데 30년이 지난 지금은 세상이 달라진 걸까? 이효 시인의 시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가보게 하였다. 큰절 올리고 싶다. 그리고 그 모임을 이끌었던 정현숙 씨는 그때 나이 마흔이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다. 이런 의인이 있어 우리 사회는 굴러가는 것이려니.

 

  [이효 시인]

 

《미네르바》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당신의 숨 한 번』『장미는 고양이다』. 인사동시인협회 부회장, 단테문인협회 상임이사. 서울시민문학상, 아태문학상, 황진이문학상 본상, 단테문학상 본상 수상, 강동해공노인복지관 글쓰기 강사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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