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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81] 옥효정의 "카카오톡 부고"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81] 옥효정의 "카카오톡 부고"

이승하 시인
입력

카카오톡 부고

 

옥효정

 

먼저 떠납니다

 

지병인 창작 강박증과

시대의 통증 합병증으로

기억의 톱니바퀴가 멈췄습니다

이름 옆 프로필 사진을 누르고

숨길을 따라오면

카카오스토리라는 쉼표 같은 집이 나옵니다

별도의 로그인은 필요 없습니다

노란 리본이 걸린 대문을 지나서

달력 넘기듯 화면을 위로 넘기면

시간을 역주행해 생전의 한때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발표한 졸시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면 퍼 가셔도 좋습니다

의례적인 하얀 국화 대신

노란 바람개비 이모티콘 하나 남겨 주세요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입니다

미리 집을 마련해 놓길 잘했습니다

손님 몇 분이 머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래도록 귀 기울여 듣기만 하겠습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시간이었지만

시인이어서 행복했습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세요

 

p.s

고인이 생전에 써놓은 부고입니다

고인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카친님들께 보냅니다

혹시라도 잘못 전달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우리는 더 단단해지기로 했다』(애지, 2025)

 

단톡방에 부고가 뜨면 많은 사람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의례적인 인사를 보낸다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이제는 죽음도 형식

 

  아주 재미있는 시지만 씁쓰레한 뒷맛이 남는다. 아 정말 나도 저런 부고를 남기고 죽을까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1연과 2연은 고인이 생전에 써놓은 부고라고 한다. 미리 써놓은 부고를 보니 그는 시인이었다. 화면을 뒤로 넘기면 시인이 그동안 발표한 졸시도 볼 수 있게 해놓았단다. 마음에 들면 퍼 가셔도 좋단다.

 

  시인이 죽기 전에 작성한 이 문서를 죽은 이의 아내는(혹은 자식은) 고인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카친님들에게 보내야 한다. 유언이나 마찬가지니까. 엉뚱한 사람에게 갈 것을 예상해 부고를 보낸 이는 사과의 말까지 마지막에 적어놓았다.

 

  이 시는 일종의 세태시라고 할까 풍자시라고 할까. 거의 모든 의사 표현이 카톡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 지금은 휴대폰만 있으면 은행 업무, 병원 업무, 물건 주문, 대화, 부탁, 신청, 청탁, 협박, 오락, 게임, 길 찾기, 택시 부르기 등 못하는 것이 없다. 청첩장도 우편으로 안 오고 대부분 카톡으로 온다. 부고도 카톡으로 받는다. 단톡방에 부고가 뜨면 많은 사람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의례적인 인사를 보낸다. 그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져 있는 인사를 유가족이 보면 기분이 어떨까? 고맙다는 생각이 과연 들까?

 

  누군가 책을 내면 단톡방에 단톡방 운영 관리자나 저자의 지인이 책 출간을 축하한다는 짧은 글을 책 표지와 함께 올리는데 그것을 본 사람이 시집을 숙독하고 독후감을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것이 형식이고 의례다. 그래도 이 시의 주인공인 시인과 p.s를 쓴 이는 인간의 도리를 다한 것이다. 아주 예의가 바른 사람이다.

 

  [옥효정 시인]

 

  2014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인천작가회의 회원, 시문학회와 참살이문학회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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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시인#이승하시해설#카카오톡부고#옥효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