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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81] 김남미의 "삼식이 아내"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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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이 아내

 

김남미

 

#1

 

이빨 빠진 호랑이는 눈치 또한 빨라야 해

반찬투정 옛말이지 인생 4막 을이 되어

밥줄이 목숨 줄이야, 무엇이든 감지덕지

 

숨통을 틔워주는 외출은 예의라 하네

어설픈 설거지에 쨍그랑 터지는 심장

아내의 매몰찬 눈빛, 슬그머니 기는 거야

 

#2

 

한때는 목을 세워 유세깨나 부렸다지

그 타박 다 받아내며 해장국 끓여주던

목소리 참 고마운

예쁜 아내 있었지

 

—『금속성 이빨』(동학사, 2025) 

삼식이 아내_ 김남미 시인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삼식이 아내_ 김남미 시인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만국의 삼식이여 눈치껏 살아남자

 

  삼식이는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속칭이다. 이 땅의 아내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당당해지고 남편들은 움츠러드는가? 대체로 그런 것 같다. 아내들이 퇴직한 남편을 일컬어 뻔뻔하게 하루에 세 번이나 밥 차려주기를 원한다고 삼식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만들어진 말로, 남편분들은 이 말에 불만이 많다. 퇴직한 남성을 하대하는 말로, 인권침해의 여지가 다소 있지만 애교로 봐주어야 할 말이 아닐까.

 

  이 시조는 시적 화자가 남성인데 쓴 시인은 여성이다. 시인이 남자의 마음을 완전히 뚫어보고 있다. 1번 작품에서 남편은 퇴직해 집에 있으면서 이다. ‘이 된 아내의 눈치를 본다. 하루에 한 끼 내지 두 끼는 나가서 먹는 것이 좋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반찬투정을 하면 절대 안 된다. 그랬다가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설거지하다가 그릇을 깬다?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다.

 

  남편이 생각하기를. 아내가 젊었을 때는 목소리도 그렇게 곰살가웠고 길 가던 남자들의 눈빛이 달라질 정도로 예뻤는데 지금은? ‘아아, 무섭다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 하하, 돈 벌어 온다고 한때는 목을 세워 유세를 부렸는데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요 날지 못하는 독수리다. 호랑이가 아닌 동네 고양이가 되었고 독수리가 아닌 역전 비둘기가 되었다. 조심해야 한다. 불쌍한 이 땅의 삼식이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은퇴한 남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제는 가사노동의 책임을 나누어져야 한다고. 청소와 설거지는 기본이요 분리수거와 시장보기도 남자의 몫이다. 남자는 근처의 공공도서관에 가서 살면서 점심도 해결하는 것이 좋다. 친구들과 만나 저녁을 해결하면 더 좋다. 그래도 함께 늙어가게 되었으니 의좋게 살 일이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가기 전에 동네 산책도 같이 하고, 쇼핑도 같이 하고, 여행도 같이 다니고…. 서정주 시인의 「무등을 보며」를 읽어보길 권한다.

 

  중년의 아내도 가사 퇴직을 하고 싶을 것이다. 가부장제의 마지막 세대인 남편이 그동안 누린 혜택을 이제는 아내와 나누어야 한다. 삼식이라 불리게 된 현실이 슬퍼서 괴롭겠지만 아내를 위해 이 정도의 일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생존을 위하여, 아니, 화합을 위하여. 평화를 위하여.

 

  [김남미 시조시인]

 

  2017년 산문집 『홈스테이는 기회다』 발간. 2021<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25년 경기문화재단 예술인 기회소득 받음. 현재 한국시조시인협회 발행 《시조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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