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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호의 시조아카데미 57] 강현덕의 “기도실”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절제된 시어 속에서 길어 올린 여운이 긴 울림”

기도실

 

강현덕

 

울려고 갔다가

울지 못한 날 있었다

 

앞서 온 슬픔에

내 슬픔은 밀려나고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 

기도실 _ 강현덕 시인

강현덕의 단시조 「기도실」은 짧은 행간 속에 인간 슬픔의 깊이와 연민의 윤리를 절제된 언어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 시조에서 기도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상처들이 잠시 신발을 벗어두고 앉아 우는 자리이며, 말보다 침묵이 더 큰 기도가 되는 마음의 성소이다. 시인은 그 공간을 통해 인간 내면의 가장 여린 부분을 건드린다.

 

울려고 갔다가 / 울지 못한 날 있었다는 초장은 매우 담담하지만 그 안에 큰 파문이 숨어 있다. 보통 눈물은 자신의 아픔에서 비롯되지만, 여기서는 울기 위해 찾아간 장소에서 오히려 울지 못한다. 이는 감정의 역설이다. ‘기도실은 자신의 슬픔을 토해내기 위해 들어간 공간인데, 정작 화자는 자기 울음을 잃어버린다. 이때 울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마음속 응어리와 삶의 무게다. 결국 화자는 자신의 상처를 붙들고 기도실 문을 열었으나, 그 안에서 더 크고 절박한 슬픔과 마주하게 된다.

 

앞서 온 슬픔에 / 내 슬픔은 밀려나고라는 중장의 표현은 이 작품의 핵심이다. 여기서 슬픔은 마치 사람처럼 먼저 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다. 기도실은 어느 한 사람만의 눈물이 허락되는 장소가 아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찾아온 사람들의 절망이 켜켜이 쌓인 공간이다. 화자의 슬픔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텐데, 다른 사람의 울음 앞에서 조용히 뒤로 물러선다. 이 장면은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는 순간 자신의 아픔을 상대화하게 되는 숭고한 정서를 보여준다.

 

특히 그 여자 / 들썩이던 어깨에 /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종장은 이 시조의 백미라 할 만하다. 울음을 참지 못해 들썩이는 어깨는 한 인간의 무너짐을 상징한다. 말 한마디 없이도 그 어깨는 절망의 깊이를 말해준다. 더 인상적인 것은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이라는 표현이다. 눈물은 본래 자신의 것이지만 화자는 그것마저 타인에게 건네준다. 눈물이 마치 선물이나 위로처럼 전달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인간적 연대다.

 

이 작품은 화려한 수사를 앞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절제미에서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결국 이 시조는 누가 더 아픈가를 말하는 작품이 아니다. 타인의 눈물 앞에서 자기 슬픔조차 내려놓게 되는 인간 마음의 깊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도실 문을 나서는 화자는 울지 못했지만, 어쩌면 가장 깊은 기도를 하고 나온 셈이다. 자기 눈물을 타인에게 내어줄 수 있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이 시조가 끝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일 것이다.

김강호 시인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시인 김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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