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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아카데미 ] 유재영의 "둑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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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아카데미 ] 유재영의 "둑방길"

시인 김강호
입력
[ 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3 ] 누구나 시조를 쓸 수 있습니다

둑방길

 

유재영

 

 

어린 염소

등 가려운

여우비도

지났다

 

목이 긴

메아리가

자맥질을

하는 곳

 

마알간

꽃대궁들이

물빛으로

흔들리고,

 

 

부리 긴 물총새가

느낌표로

물고 가는

피라미

 

은빛 비린내

문득 번진

둑방길

 

어머니

마른 손 같은

조팝꽃이

한창이다

둑방길 /유재영 [이미지 : 류우강 기자] 

   시조는 운율이 생명이다  
   
  유재영 시인은 1948년 충남 천안 출생이며 1973년 박목월 선생에게 시를, 이태극 선생에게 시조를 추천받아 문단에 나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이며 한 편의 시조를 빚기 위해 100편을 버릴 만큼 장인적인 시정신을 지니고 있다, 등단 28년 만에 첫 시조집 햇빛 시간을 발간할 정도이니 유재영 시인의 퇴고하는 자세는 무섭다 못해 푸르게 날이 선 보검 같고, 시를 보는 눈매는 매서운 독수리 같아서 내가 시조를 허투루 써서 지상에 내놓을 때면 마음이 섬뜩할 때가 있다.

 

 위 시조는 2연으로 된 연시조다. 행갈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리듬감이 살아 있다. 시조는 운율을 소중하게 다루었으며 옛 시조는 창()으로 불렸으니 리듬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둑방길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으며 시에 내재된 자연의 이미지가 독자들을 둑방길로 끌어들여 함께 걷게 하고 싶은 묘한 끌림이 있다. 둑방길의 배경은 전형적인 자연을 액자화하고 있어서 독자들의 유년 어느 날을 떠올리게 한다.

 

 소재로 들여놓은 여우비, 어린 염소, 목이 긴 메아리, 마알간 꽃대궁, 부리가 긴 물총새, 은빛 비린내, 조팝꽃이 어우러져 애잔하고 정갈한 한 폭의 수채화로 우리 앞에 펼쳐진다. 위 시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연을 배경으로 한 유년이 시의 큰 줄기를 이룬다는 점인데 자연스럽게 둘째 수 종장 어머니에서 엄청난 반전을 이루고 있다. ‘어머니 마른 손 같은 조팝꽃...’ 

 

  나는 위 시조를 읽은 후 조팝꽃만 보면 어머니의 마른 손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이 핵심적인 단어 하나가 둑방길을 더욱 빛나게 해 놓은 것이다. 둑방길은 문학적 가치와 더불어 시조 존재의 의미가 상호적 호응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작품의 완성도가 절정에 이르러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자작 시조로 찾아올 예정이다.
 

 시조의 일상화, 전문화, 세계화를 위해 귀한 시조 마당을 마련해놓고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류안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발행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김강호 시인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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