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82] 박시우의 "그믐"
그믐
박시우
후퇴하는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와
삼십 중반 사내를 앞장세웠다
충청도로 넘어가는 영마루에서 쉴 때
사내는 몸을 낮추고
눈매 순한 젊은 군관에게 다가갔다
내일이 집안 제사라요
어머니께서 밤잠 안 주무시고 기다리시니
꼭 좀 보내 주시라요
사내를 한참 들여다본 군관은
대열 끝으로 눈길을 던지더니
몸을 돌려 달만 쳐다보았다
이튿날 미군 쌕쌕이가 고개 너머로 날아갔다
아버지는 아흔이 넘어도
군관 걱정에 자갈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어두운 그늘이었을 때』(걷는사람, 2025)

[해설]
이 시 속의 이야기가 아무리 생각해도 허구가 아니라 사실인 것 같아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에게 전화를 드렸다. “사실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 군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원 세상에!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20, 30대 젊은이들에게 영화 <고지전>과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기를 추천한다. 엄청난 전쟁이었다. 전쟁 기간이 그리 길지도 않은 3년 1개월 동안이었다. 민간인 사망자가 약 500만~600만 명으로 추정되며, 이는 한반도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한다. 군인 사상자는 한국군 40만 명, 북한군 50만 명, 유엔군 16만 명이었다.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온 중국군은 90만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초반에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열을 가다듬어 북진을 하였고, 중국군의 남진으로 흥남으로, 개성 이남으로 다시 밀려 전선이 남쪽으로 파죽지세로 밀려났고 그 이후 고지를 뺐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계속되다 정전협정(停戰協定)을 유엔군, 중국군, 북한군이 체결하면서 끝난 전쟁이 한국전쟁 혹은 6ㆍ25전쟁이다.
그 와중에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왜 30대 중반 사내를 끌고 갔을까? 아마도 길 안내를 할 지리에 밝은 사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전시라서 북한군에 넣어도 되지만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십중팔구 총살시키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내는 죽을 판 살판, 혹은 이판사판에 떠오른 아이디어였는지 정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일이 집안 제사라요. 어머니께서 밤잠 안 주무시고 기다리시니 꼭 좀 보내 주시라요.”라는 말을 젊은 군관 앞에 가서 했던 것이다. 때마침 그날이 제사가 있는 그믐이었나 보다.
시인의 아버지는 그래서 귀가할 수 있었다. 살아서 돌아간 것은 조상님 덕분인가. 그런데 미군 전투기가 북으로 날아가는 소리를 아버지는 들었고 폭음도 들었을 것이다. 군관은 전쟁 중에 죽었을까? 북한으로 넘어갔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목숨을 살려준 군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품고 아흔이 넘게 사신 아버지가 군관을 걱정하곤 했다. “자갈처럼 중얼거렸다”는 무슨 뜻일까? 자갈은 강바닥에서 오래 갈리어 반들반들해진 잔돌이다. 세월의 길이를 담보하고 있는 것이 자갈이다. 아버지는 그 군관을 오랫동안 고마워했던가 보다. 광복 80주년인 올해, 분단의 골은 더욱더 깊어지고 있다.
[박시우 시인]
1989년 《실천문학》 봄ㆍ여름호에 집단창작을 하면서, 그리고 2009년 《리얼리스트》 창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국수 삶는 저녁』이 있다. 본명은 박성용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