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23】 백중
백중
김선호
돌쇠 마당쇠 춤사위에 간난이도 끼어든다
손꼽아 기다린 날이 칠월 보름 백중이라 지게 벗고 호미 놓고 길쌈도 그만두고 떡하니 큰대자로 누워 코도 실컷 골아보세 흰쌀밥 돼지고기 배 터지게 치웠으니 마님이 주신 돈으로 장 구경 안 가겠나 빳빳이 다린 옷 입고 양반걸음도 해보세나 아랫것들 신명 나서 앞마당이 소란한데 사랑에서 지켜보는 대감님 가슴속엔 얼러서 함께하려는 지혜가 묻었구나 한세월 흘러가며 미풍도 가져갔는지 대감의 너털웃음도 저승을 따라갔는지 한 겨레 한 자손인데 요상하게 미쳐 간다 사람하고만 악수한다고 옆에 앉아 외면하고 투쟁만이 혁신이라고 분기탱천 불을 켜고 진용을 갖추자마자 기싸움이 백중지세라 한발씩만 물러서면 솟을 구멍 보이는데 축 처진 백성 어깨 측은하게 읽힐 텐데 그놈의 자존심 땜에 청맹과니 되었구나
이 보오 백발백중 쏘니 가슴이 좀 뜨끔하오?

많이 쇠퇴하기는 했지만, 백중이라는 명절이 있다. 음력 7월 15일에 맞는데 단오, 한식, 유두와 함께 일부 농촌, 사찰 등에서 아직도 명맥을 잇는다. 정월 보름인 상원, 시월 보름인 하원과 함께 중원이라 불리며 삼원의 반열에 든다. 술과 음식, 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기도 했다.
머슴에게 백중은 잔칫날이었다. 주인마님은 머슴들을 배불리 먹이고 새 옷과 돈을 주며 쉬게 한다. 신명 난 머슴들은 사물 장단에 맞춰 어깨춤 추고 읍내장터 가서 신천지도 맛보며 맘껏 하루를 즐겼다. 재충전시켜 가을 농사를 잘 마무리하려는 속내도 물론 들었겠지만, 이면에는 함께하는 공동체 의식이 숨어 있다. 머슴을 식구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넉넉함과 따뜻함이 묻어난다.
정치권에서 샅바싸움이 한창이다. 사람하고만 악수한다며 옆자리와 눈도 안 마주치고,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만이 살길이라며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인다. 일촉즉발의 전운에 머리칼이 주뼛 선다. 우리 아니면 모두 적이라고 둘러치는 철조망은 자꾸자꾸 높아만 간다.
여든 야든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다. 국회의사당이, 속에 쌓아둔 한이나 풀어내라고 만든 자리는 더욱 아니다. 함께 가야 멀리 간다고 했던가. 주인과 머슴으로 살던 시절도 공동체 의식이 있었거늘, 패거리 문화가 도를 넘는다. 민망했는지, 반갑게 달려오던 백중날이 눈치 슬슬 살핀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 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 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으밀아밀』 『자유를 인수분해하다』등 다섯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