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삼삼한 책] 권오운 시인이 펴낸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
[이승하 시인의 삼삼한 책] 2월 13일부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이승하 교수/시인의 칼럼 연재가 시작됩니다.
권오운 시인은 1966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는데, 1967년에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다시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 이런 경우가 간혹 있었다. 손영목 소설가의 경우 1974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는데, 197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또 당선되었다.
같은 해에 신춘문예 2관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설가 백시종은 1967년에 동아일보와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시인 오태환은 1979년에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송기원은 1974년에 중앙일보 소설이, 동아일보 시가 같이 당선되었다. 여러 해에 걸쳐 다관왕을 한 이로는 이근배가 5관왕을 했었고 문형열이 4관왕을 오탁번ㆍ송희복ㆍ강유정이 장르를 넘나들며 3관왕을 했었다.
이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권오운 시인이 펴낸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이라는 책을 소개해 드릴까 한다.
1942년 강원도 명주군에서 태어난 권오운은 [신춘시], [시학] 등 동인활동을 하였다. 1968년 학생잡지 《학원》의 편집기자로 출발하여 《KBS 여성백과》 편집장과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로 10년간 재직했다. 요즘은 주로 ‘우리말, 우리글’ 분야 원고 집필에만 전념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우리말 지르잡기』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 『알 만한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 1234가지』 『우리말띄어쓰기 대사전』 등이 있다.

강석경, 구효서, 신경숙, 공지영, 은희경 등 우리 문단의 중견 소설가부터 신인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모국어의 연금술사이며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유명작가들의 글 실수를 지적하고, 잘못 쓴 문장들을 짚어내고 있다. 저자는 잘못된 사례를 하나하나 찾아내기 위해 많은 문학작품을 읽고 이러한 작품들에 사용된 우리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 사전 등 수많은 정보를 참고하여, 잘못 쓰인 낱말의 예문이 실린 쪽 밑에 그 말과 관련된 ‘우리말 분류 소사전’을 곁들였다. 페이지, 페이지에 담긴 우리말 이야기를 통해 저자의 우리말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들의 억지와 횡포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곧춘 우리말 책
“기분이 상하면서 속세말로 열불이 나서 견딜 재간이 없었다.” - 신경숙의 「달의 물」에서
우선 ‘속세말’이란 말은 없다. ‘통속적으로 쓰는 저속한 말’은 ‘속어(俗語)’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시대의 유행어’라는 뜻인 ‘시쳇말’이 제격이다. 다음 ‘열불’이란 ‘매우 흥분하거나 화가 난 감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속세말’로서가 아니라도 바른말이다.
“몸집이 비대한 이 국장은 모 심다 나온 사람마냥 양복바지마저 둥개둥개 걷어붙인 모습이었다.”] - 권지예의 「투우」에서
여기서는 ‘둥개둥개’가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다. ‘둥개둥개’는 다 아는 것처럼 ‘아이를 안거나 쳐들고 어를 때 내는 소리’이다. 그러면 울던 아기도 울음을 그치고 까르륵까르륵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는 ‘양복바지를 걷어붙인’ 모양새를 두고 ‘둥개둥개’라 하고 있다. 안 되는 소리다. 소매나 바짓가랑이가 ‘걷어붙여’진 모양은 ‘둘둘’이다. ‘큰 물건이 여러 겹으로 둥글게 말리는 모양’이 ‘둘둘’이니까.
“나는 두 구둣발을 들고 힘차게 토꼈다.” - 성석제의 「성탄목」에서
‘구둣발을 들고 토꼈다’가 이상하다. ‘구두를 신은 발’이 ‘구둣발’인데 그것을 (그것도 두 짝 다) 들고 어떻게 뛴단 말인가? 신경숙이 ‘발자국을 들고 걷는다’고 했다가 내 지청구를 들은 바 있거니와 이제 성석제까지 이렇게 나오면 ‘여자는 발자국을 들고 걷고, 남자는 구둣발을 들고 뛴’단 말인가? 물론 ‘발자국을 들고’와 ‘구둣발을 들고’는 약간의 차이는 있어 보이나 둘 다 용서는 되지 않는다. 아무리 ‘줄행랑치다(놓다)’를 과장되게 표현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두 발로’ 뛰어야지 ‘두 발을 들고’는 뛸 수가 없다. 안 그런가?
“남자 밑에 깔려 색을 쓰면서도 카르멘인가 뭔가 그따위 고상을 떨어야 하는 여자…….” - 김별아의 「비너스와 큐피드의 알레고리」에서
‘품위나 몸가짐이 속되지 아니하고 훌륭하다’가 ‘고상(高尙)하다’의 풀이이다. ‘고상한 인격’, ‘언행이 고상하다’처럼 쓰인다. 따라서 ‘고상 떤다’고는 할 수 없다. ‘고상’은 ‘떨’ 수도, ‘부릴’ 수도, ‘거릴’ 수도 없는 말이다.
“스물도 안 된 처녀가 남자와, 그것도 평판이 안 좋은 남자와 도망을 치다니, 그녀는 배신자며 도둑이며 화냥녀였다.” -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에서
‘화냥녀’는 ‘화냥년’의 잘못이다. ‘화냥년’은 ‘화냥’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며, ‘화냥’은 ‘서방질하는 여자’이다. ‘자기 남편이 아닌 남자와 정을 통하는 짓’이 ‘서방질’이니까 예문의 ‘그녀’는 비록 평판이 안 좋은 사내와 도망은 쳤지만 엄밀하게 따져 최소한 ‘화냥년’은 아니다. ‘그녀’는 ‘처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내와 ‘난질’에 든 것일 뿐이다. ‘여자가 정을 통한 남자와 도망가는 짓’이 ‘난질’이다.
“담배 대신, 달달한 자판기 커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 정이현의 「홈드라마」에서
여기 나오는 ‘달달하다’는 아예 없는 말이고, ‘다달하다’와 ‘달다하다’는 사전에 보이는 말이긴 하나 이마저 ‘달곰하다’와 ‘달콤하다’의 방언이다. ‘달다’는 표현 역시 수도 없이 많거늘 하필이면 엉터리 말을 갖다 들이댈까.
“종아리 정가운데 박혀 있는 자신의 체모 한 올을 발견했다. 아마도 팬티스타킹을 신던 중 속옷에서 떨어져 그곳에 붙은 모양이었다. 체모는 다른 털과는 충분히 구별될 수 있는 윤기와 웨이브를 가지고 있었다.” - 김애란의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에서
‘체모’가 잘못 쓴 말이다. 체모란 무엇인가? ‘몸에 난 털’ 즉 ‘몸털’이 체모(體毛)다. 그런데 ‘체모는 다른 털과 구별’된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다른 털’이라면 사람의 것 말고 짐승 털을 말함인가? “팬티스타킹을 신던 중 속옷에서 떨어진 모양”이라니까 사람 털은 분명 사람 털이다. 그렇다면 여기 쓰인 ‘체모’는 잘못 쓰인 것이 확실하다. 더군다나 “윤기와 웨이브를 가지고 있는” 털이라고 자세히 묘사되어 있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체모’가 아니라(체모이기는 하나) ‘음모(陰毛)’ 즉 ‘거웃’이다. ‘치부(恥部)에 난 털’이라고 하여 ‘치모(恥毛)’라고도 한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바르게 이해하고 사용할 때 우리말과 우리글은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될 것이다. 잘못된 사례를 하나하나 찾아내기 위해 읽었을 많은 문학작품들과 이러한 것들에 사용된 우리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 들여다보았을 각종 사전 등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 들인 저자의 시간과 열정, 우리말에 대한 애정을 페이지마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 우리말 지킴이 권오운이 떴다
우리말 지킴이를 자임하며, 그동안 『알 만한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 1234가지』 『우리말 지르잡기』 등의 책을 통해, 유명작가들의 문학작품은 물론 교과서, 신문, 방송 등에서 잘못 쓰인 우리말의 용례를 조목조목 짚어냈던 권오운의 신간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주)문학수첩)이 출간되었다.
강석경, 구효서, 신경숙, 공지영, 은희경 등 우리 문단의 중견 소설가부터 지난해에 등장한 김애란은 물론 정이현, 천운영, 한강, 이만교, 박성원, 한창훈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50여 명 작가의 글 실수를 지적하고 있는 이 책은 이문열, 황석영, 장정일의 삼국지에서 각각 빚어진 잘못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짚어낸다. 권오운의 매서움은 꼭지 제목에서부터 느껴진다.
* 아름다운 우리글을 갈고 닦자고 퉁바리를 놓은 책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한 그의 두 번째 저서가 출간되었을 때, 작가는 “영어발음을 잘하게 하려고 애 혓바닥 수술까지 시키는 시대에 우리말, 우리글을 갈고 닦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제 말 제 글이나 제대로 하고 나서 영어든 뭐든 하라고 퉁바리를 놓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세 번째 저서를 출간하면서 “오랫동안 벼르던 일이어서 기쁘기도 하지만 아쉬움과 두려움 또한 그만 못지않다”고 소회를 밝혔다.
하나라도 더 건져서 제대로 꼬집고 지르잡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천박(?)한 식견으로 종작없이 덤벙대기만 했다는 질책이 두려움이고, 제대로 익힌 학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이름 석 자 자르르한 문필가도 못 되는 처지에 공연히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따따부따한 게 아닌가 하는 자책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30년 간 잡지사에서 취재ㆍ편집을 해온 그는 재직 중에도 남의 원고를 만지다가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여러 문헌을 뒤져 바른 표현을 찾아냈다. 그런 직업의식이 발동해 우리 주위에서 잘못 쓰이고 있는 표현을 허투루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은퇴 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시창작 강의를 하면서도 바른 우리말, 우리글을 쓰고 알리는 데 시간을 쏟고 있다.
모국어의 연금술사인 작가들은 글을 쓸 때 좀 더 자주 국어사전을 뒤적여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상식에 벗어나고 이치에도 안 맞는 문장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들의 억지와 횡포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곧춘 권오운이 매운 죽비를 들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우리말 분류 소사전’이다. 잘못 쓰인 낱말의 예문이 실린 쪽 밑에 그 말과 관련되게 자리 앉힌 소사전은 오랫동안 저자가 벌여온 『우리말 분류 사전』의 ‘맛보기’로서 읽는 이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승하 시인은 196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시인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 창작문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화가 뭉크와 함께」가 당선된 이후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비망록」이 당선되며 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