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88] 김욱진의 "AI"
AI
김욱진
저 아이 요즘 뭐든지 물으면 척척 대답을 다 해준다고?
에이, 세상에 그런 아이가 어디 있어
태어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말로만 듣던 AI, 딴 세상 얘기처럼 들리더니만
어느새 그 아이가 이렇게 많이 컸어
챗GPT라고 부른다면서
그래, 맞아
조무래기라고 얕보지 말게
지난번 이세돌하고 바둑 둬서 이겼다는 그 아이야
그럼, 돌아이구만
이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인가
야, 이 친구야
지금, 여기 농담할 상황 아닐세
머잖아 자동차 자율주행 운전도 저 아이가 하고
자네가 몇 날 며칠 끙끙거려 짓는다는 시 한 편
저 아이는 몇 초 만에 후딱 써버린다네
시면 시, 소설이면 소설
심지어 나의 일기까지도 줄줄 다 써준다네
짧다 그러면 금방 늘여주고
좀 길다 그러면 눈치껏 줄여주고
“……해줘” “……알려줘” 하면
전문적이면서도 캐주얼하게
간단명료하면서도 자신감 있고 친근하게
애교 떨듯 눈 몇 번 깜빡깜빡하면서
입맛대로 요리조리 맞춰주는 AI
대체 저 아이는 어느 세상에서 왔는지, 속도 없어
에이, 시발 것
시고 나발이고
이러다 저 아이 종노릇하다 가게 생겼네, 참 나
—『어느 노송의 주례 말씀』(시인동네 시인선, 2025)

[해설]
AI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최근에 어떤 문학 단체에서 AI 관련하여 특강을 해달라기에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발표문을 미리 작성해 보냈다. 발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20세기는 인공지능 이전 시대였고 21세기는 인공지능 이후 시대이다. 2000년대와 2010년대는 생성형 AI인 챗GPT 활용화 이전 시대였고 2020년대는 챗GPT 활용화 이후 시대이다. 챗GPT는 방대한 분량의 언어 데이터를 운용하기 때문에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이라 불리기도 한다. 언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언어를 질료로 쓰는 문학의 경우 인공지능과 챗GPT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이제 문예 창작이 아니라 문예 조합이라는 말이 쓰일지 모른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제일 빈번한 화제가 AI에 관한 것이다. 써보았더니 꽤 영리하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 성실히 답변한다, 다시 요구하면 개선책을 마련한다, 사과를 아주 깍듯이 한다, 대화가 통한다, 눈치가 확실히 빠르다, 성실할 뿐 아니라 노력형이다……. 대체로 긍정적인 평이다. 이런 부하가 어디 있는가. 이런 비서가 어디 있는가.
김욱진 시인도 AI의 좋은 점에 대해 “전문적이면서도 캐주얼하게/ 간단명료하면서도 자신감 있고 친근하게/ 애교 떨듯 눈 몇 번 깜빡깜빡하면서 입맛대로 요리조리 맞춰준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시를 쓰고 소설을 쓴다는 것이다. 2003년에 등단해 5권의 시집을 내는 동안 끙끙 앓은 밤이 무수한데 이놈은 몇 초 만에 시 한 편을 쓴다. 아직은 내 실력에 미치지 못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으니 언제 나를 추월할지 모른다. “시고 나발이고/ 이러다 저 아이 종노릇하다 가게 생겼네, 참 나” 하고 개탄한다. “A, 詩發 것” 하면서 욕까지 한다. 아래 글은 3월 30일자 국민일보 기사다.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가 “95%를 AI(인공지능)가 썼다”고 밝힌 소설을 발표했다. 30일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달 하순 발매된 잡지 ‘광고’에 소설가 구단 리에(34)의 신작 소설이 게재됐다. 1990년생인 구단 리에는 지난해 『도쿄도 동정탑』이란 장편소설로 제170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 기자회견에서 “작품의 5% 정도는 생성형 AI로 만든 문장을 사용했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잡지사는 작가가 쓴 문장과 AI가 만든 문장의 비율을 바꿔 “AI가 95%를 쓰고, 나머지 5%를 작가가 쓴 소설”을 의뢰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소설이 잡지에 실린 「그림자 비」라는 단편이다. 인류가 사라진 뒤 지구에 남겨진 AI가 감정이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탐구한다는 내용이다. 작가가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을 써서 방향성을 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대화형 AI인 챗GPT에 맡겼다. 작가는 소설 쓰는 법을 지도하는 것처럼 챗GPT와 대화를 거듭했으며, 둘 사이의 대화 기록은 소설 분량의 5배나 된다. 잡지는 작가와 챗GPT가 나눈 대화의 일부를 공개했다. 공개된 대화를 보면, AI의 능력을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는 작가의 초조함이나 실망, 답답함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야마구치 편집장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작가와 사람을 넘는 능력을 얻었다고 여겨지는 AI와의 대화에는 작가의 고뇌나 AI의 한계가 나타나기도 한다”면서 “소설뿐 아니라 대화록도 하나의 작품으로 읽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2021년 8월 25일에 간행된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파람북)를 AI 소설가 바람풍이 썼고 김태연 작가는 ‘소설감독’이라고 표지에서부터 밝혔다. 김욱진 시인은 “머잖아 자동차 자율주행 운전도 저 아이가 하고”라고 불안해 하는데 왜 우리는 AI 칭찬만 하고 있는지. 문학 창작에 다소라도 도움을 받는다면 분명히 공동창작이다. 모작(模作) 내지는 도작(盜作)이다. 창작자의 창조성이 옅어질 때 문학은 위기를 맞게 되는 게 아니라 자멸할 수도 있다. AI가 자충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김욱진 시인]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경북대 사회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비슬산 사계』『행복 채널』『참, 조용한 혁명』『수상한 시국』 등이 있다. 박종화문학상, 김명배문학상 작품상을 수상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발간지원(2020)과 발표지원(2023)에 선정되었으며, 한국문협 달성지부 회장을 역임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