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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임의 시조 읽기 29】 김종연의 "중환자실 앞에서"
문학/출판/인문
[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29】 김종연의 "중환자실 앞에서"

시인 강영임 기자
입력
중환자실 앞에서 / 김종연 이미지: 강영임 기자
중환자실 앞에서 / 김종연 [이미지: 강영임 기자]

중환자실 앞에서

 

김종연
 

 

밤새 자란 침묵이 복도까지 흘러넘쳐

 

덩그런 긴 의자를 삼켜버린 지 오래

 

발소리 저벅저벅이 제발제발로 들린다

 

『시 약방을 아시나요』 (2025.작가)

 


 

사랑하는 이가 생사의 문턱에 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밤새 자란 침묵이 복도까지 흘러넘친다. 그 침묵은 흘러넘치다 끝내, 의자마저 삼켜 버린다. 그것은 오랫동안 앉은 이들의 체온과 기다림을 품고 있지만, 그 무게는 말로 전할 수 없다.

 

중환자실 앞에서의 시간은 세속의 시간과 다르다. 분침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기다리는 이들의 시간은 단절을 매개로 한 기억과 후회를 불러들인다.

 

생로병사는 오래된 진리지만 늙고 아프고 떠난다는 것은 늘 두렵다. 병과 죽음은 불시에 우리를 불러낸다. 우리는 그 부름 앞에 순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사납게 반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몸부림은 살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다.

 

중환자실 앞 복도의 공기는 무거워서 숨을 쉴 수가 없다. 문이 열릴 때마다 누군가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또 누군가에겐 세상의 끝 같은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이 기다림 속에서 문득 깨닫는다. 삶이란 중환자실 같은 곳을 지나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중환자실 앞에서」는 살아가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깊이 있게 탐구하여 존재의 근원을 형상화 시켰다. ‘저벅저벅이 제발제발로들리는 그 발소리는 중환자실 문을 향한 발걸음이 아니라, 누군가를 붙잡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팔월 넘긴 초록이 아직 지칠 기색이 없다. 지칠 줄 모르는 초록처럼 중환자실 안의 모든 이들도, 있는 힘껏 힘을 내보는 구월이면 좋겠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 기자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에 게재됩니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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