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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희 초대전 《한갓찰나적인것으로》… 찰나의 감각을 선과 색으로 붙잡다

임만택 전문 기자
입력
구구갤러리 특별기획, 10월 1일부터 18일까지 검정과 푸른색, 회색의 흐름 속에 산·꽃·여행의 기억을 추상적 조형언어로 풀어내 10월 3일 오후 4시 오픈 세리머니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감각과 기억, 자연을 바라본 순간의 인상을 화면 위에 붙잡아 두는 강영희 작가의 초대전 《한갓찰나적인것으로》가 서울 양천구 구구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포스터 / 구구갤러리 제공

구구갤러리 특별기획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2026년 10월 1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되며, 10월 3일 오후 4시 오픈 세리머니가 열린다. 전시장에는 대형 회화부터 중·소형 작품까지 강영희가 최근 제작한 추상회화들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의 제목 《한갓찰나적인것으로》는 오래 붙잡아 둘 수 없는 순간과 감각에 주목한다. 화면에서 구체적인 산이나 꽃, 새와 같은 이미지가 언뜻 떠오르지만, 그것들은 사실적인 형태로 고정되기보다 붓의 움직임과 선, 색면 속에서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형상을 그리기보다 ‘형상이 되기까지’를 바라보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산이 산이되기까지’, ‘꽃이 꽃이되기까지’라는 작품 제목이다. 이 제목들은 작가가 완성된 대상 자체보다 그것이 하나의 이미지와 감각으로 형성되는 과정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이 산이되기까지’ 연작에서는 짙은 검정과 회색, 청록과 푸른색이 서로 겹치며 화면을 구성한다. 산의 능선처럼 보이는 덩어리가 나타나는가 하면, 바로 옆에서는 색면이 물처럼 흘러내리거나 선이 갑자기 방향을 틀며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전시 전경

전시 전경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뚜렷하다. 흰 벽과 짙은 청색 벽을 따라 설치된 작품들은 서로 다른 크기와 리듬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큰 화면에서는 검은 붓질의 힘과 넓은 여백이 부딪히고, 작은 작품에서는 압축된 색면과 선이 보다 응축된 긴장을 만들어낸다.

 

검은 붓질과 여백 사이에서 태어나는 풍경

 

강영희의 화면을 지배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검정이다.

‘나의 즐거운 여행’, 130×162.2cm, Mixed media on canvas, 2026

그러나 이 검정은 화면을 무겁게 닫아버리기보다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넓고 거친 붓질은 산의 실루엣처럼 보이기도 하고, 바람이나 구름, 물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에 가느다란 선이 빠르게 화면을 가로지른다. 선은 어떤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기보다 시선의 이동과 순간적인 몸의 움직임을 기록한다.

 

특히 흑백에 가까운 작품에서는 먹의 번짐을 연상시키는 회색과 검정이 화면을 크게 차지하지만, 넓은 흰 여백이 함께 존재하면서 무게감을 덜어낸다. 동양적 수묵의 감각을 연상시키면서도 재료와 화면 구성은 현대 추상회화의 언어에 가깝다.

 

파랑과 청록, 빨강이 만드는 순간의 긴장

 

전시는 흑백의 화면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강영희는 푸른색과 청록색, 빨강, 주황, 노랑 등을 선택적으로 삽입하며 화면 전체의 흐름을 바꾼다. 포스터에도 사용된 대표 이미지에서는 검정과 회색의 큰 붓질 위로 밝은 하늘색이 넓게 놓이고, 그 옆으로 붉은 색면이 강하게 지나간다. 이 세 가지 색은 서로 섞이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하나의 순간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꽃이 꽃이되기까지’, 53×45cm, Mixed media on canvas, 2026

‘꽃이 꽃이되기까지’에서는 검정과 회색의 덩어리 사이로 연두색, 주황색과 파란색이 드러난다. 구체적인 꽃의 형태는 보이지 않지만, 색들이 만나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생성과 성장의 감각이 생겨난다.

 

작품 제목이 말하듯 중요한 것은 ‘꽃’이라는 완성된 대상보다 ‘꽃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산은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감각의 축적

 

‘산이 산이되기까지’ 연작에서도 산은 특정한 지명을 가진 풍경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산이 산이되기까지’, 162.2×130cm, Mixed media on canvas, 2026

162.2×130cm 대형 작품에서는 검정의 거대한 덩어리가 화면 아래쪽을 차지하고, 상단에는 하늘색과 회색, 붉은색의 움직임이 서로 교차한다. 산이라는 실재의 형태보다 그 산을 바라봤을 때 남겨진 기억과 감각이 화면에 축적돼 있는 듯하다.

‘산이 산이 되기까지’, 72.7×60.6cm, Mixed media on canvas, 2026

72.7×60.6cm 작품에서는 청록과 짙은 남색의 색면이 훨씬 구조적으로 배치된다. 산의 절벽이나 계곡을 연상시키지만 구체적인 장소로 확정되지는 않는다.

‘산이 산이되기까지’, 116.8×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6

또 다른 116.8×91cm 작품에서는 회색과 갈색의 부드러운 색면 위로 새를 연상시키는 작은 검은 형상이 등장하고, 가느다란 선들이 공중을 가로지른다. 이처럼 작품들은 추상과 풍경 사이에서 머문다.

 

관람자는 화면 속 형상을 스스로 산이나 새, 구름, 바람으로 읽을 수도 있고, 단순한 색과 선의 운동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나의 즐거운 여행’과 ‘비상’…움직이는 감정의 기록

 

대형 작품 ‘나의 즐거운 여행’은 제목에서부터 이동과 경험의 감정을 드러낸다.

 

화면에는 넓은 여백과 함께 짙은 검정, 회색, 푸른색, 붉은색 등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한쪽에서 시작된 붓질이 다른 방향으로 꺾이고, 선은 화면을 가로질러 지나가며 정해진 목적지 없이 이동한다.

‘비상’, 97×145.5cm, Mixed media on canvas, 2026

‘비상’에서는 더욱 즉흥적인 움직임이 강조된다. 굵은 붓질과 가는 선이 서로 충돌하고, 번진 먹빛과 비어 있는 공간이 맞물리며 상승과 하강의 운동감을 만든다. 이 작품들은 구체적인 사건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몸이 기억한 움직임과 감정의 흔적을 화면에 남긴다.

 

완성된 형상보다 ‘생성되는 순간’에 주목

 

강영희의 이번 전시는 구상과 추상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작품을 규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화면에는 분명 자연과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존재한다. 하지만 대상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다시 붓질과 색면 속으로 사라진다. 

 

따라서 이번 전시의 핵심은 무엇을 그렸느냐보다 무엇이 어떻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가에 있다.

 

산이 산이 되기 전, 꽃이 꽃으로 인식되기 전, 여행의 기억이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되기 전의 순간. 강영희는 바로 그 불완전하고 유동적인 상태를 화면에 붙잡는다.

 

《한갓찰나적인것으로》라는 제목 역시 이러한 작업 방식과 연결된다.

 

인간의 경험은 대부분 찰나에 발생한다. 어떤 풍경을 바라본 순간, 갑자기 떠오른 색, 몸을 스쳐 지나간 감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작가는 이 짧은 순간을 재현하려 하기보다 붓질과 선의 움직임으로 다시 경험하게 한다.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움직이는 풍경

 

전시 전경을 보면 작품들은 개별적으로 분리돼 있으면서도 공간 전체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 흰색 벽면에 놓인 대형 작품들은 여백과 붓질의 대비를 강조하고, 짙은 청색 벽면에 걸린 작품들은 색과 형태를 보다 선명하게 떠오르게 한다.

전시 전경

노출된 천장과 흰 벽돌, 콘크리트 바닥을 가진 구구갤러리의 공간 역시 작품의 거친 붓질과 잘 호응한다. 한 작품에서 시작된 검은 선이 다른 벽의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푸른 색면과 붉은 색의 작은 흔적들이 전시장 곳곳에서 반복된다.

 

관람객은 개별 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공간을 이동하면서 계속 변화하는 하나의 추상적 풍경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눈앞의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인간의 내면에서 그것이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보여준다.

 

강영희에게 산과 꽃, 여행과 비상은 완성된 대상이 아니다. 붓이 움직이고 색이 번지고 선이 흘러가는 과정 속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사라지는 ‘찰나적인 것’이다.

 

전시 개요

전시명: 구구갤러리 특별기획 강영희 초대전 《한갓찰나적인것으로》
작가: 강영희
기간: 2026년 10월 1일~10월 18일
오픈 세리머니: 2026년 10월 3일 오후 4시
장소: 구구갤러리
주소: 서울시 양천구 목동중앙서로9길 30
문의: 02-2643-9990
홈페이지: gugugallery.co.kr

 

주요 출품작






 

 

사진 캡션 1
강영희 초대전 《한갓찰나적인것으로》 전시 전경. 검정과 회색, 청록과 붉은색의 화면들이 구구갤러리 공간 안에서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추상적 풍경을 형성한다. 사진=구구갤러리 제공.

사진 캡션 2
강영희, ‘산이 산이되기까지’, 162.2×130cm, Mixed media on canvas, 2026. 검은 붓질과 청색·적색의 움직임을 통해 산이라는 대상이 감각으로 생성되는 순간을 담아낸다. 사진=구구갤러리 제공.

사진 캡션 3
강영희, ‘꽃이 꽃이되기까지’, 53×45cm, Mixed media on canvas, 2026. 구체적인 꽃의 재현보다 색과 선이 만나 하나의 형상으로 생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진=구구갤러리 제공.

사진 캡션 4
강영희, ‘산이 산이 되기까지’, 72.7×60.6cm, Mixed media on canvas, 2026. 청록과 남색, 회색이 중첩되며 실제 풍경과 추상의 경계를 오간다. 사진=구구갤러리 제공.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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