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의 세상보기 : 수필 읽기] 미래 사진점 /정봉학
미래 사진점
정봉학
어떻게 거기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정처 없이 걷고 방황하다 보니 허름한 골목길 모퉁이에 다다랐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비스듬한 좁은 길에는 인적이 없고 뒤로는 낮은 야산 준령이 발끝을 오므리고 있었다.
거기에 빛바랜 간판이 있었는데 '미래 사진점'이었다. 나는 다소 신기하고 호기심이 생기 기도 했지만, 그 가게의 마술 같은 힘에 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안쪽 정면 끝으로 조그마한 스튜디오가 설치되어 있고 접수대 양쪽으로 갖가지 작은 액자 사진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장 먼저 물속을 평화롭게 노니는 인어 사진이 눈에 띄었고 다음으로는 산봉우리를 한가롭게 떠도는 구름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그 밖에도 동물 모습, 열매 사진, 전원 풍경 등 수많은 사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는데 그중에는 괴물처럼 생긴 끔찍한 장면도 있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묻는 점원의 말에 나는 가게 이름이 색달라서 들어왔다고 하고 무엇을 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그 점원의 입에서 여기는 당신의 미래를 찍어드리는 곳입니다 라는 대답이 곧장 나왔다.
나는 의아해서 그 점원을 쳐다보았지만, 점원은 아무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점원은 벽을 가리키며 이 사진들은 여기에 온 손님들이 자기의 미래를 찍은 사진입니다 하고 소개하였다. 그런데 사람을 찍은 사진은 가뭄에 콩 나듯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람 사진이 별로 없네요 하고 나는 물었다. 여기는 우리의 미래를 찍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사진이 나오지는 않아요 하고 점원은 자상하게 대답해 주었다
나는 호기심이 극에 달하여 사진을 신청하였다. 점원은 나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적고 최근에 본 사진과 현재의 사진 그리고 미래에 바라는 사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신혼 초 영월 동강에서 찍은 우리 부부 사진이 최근 생각났다고 하고 현재와 미래에 바라는 사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현재 사진은 현재 어떻게 살고 있고 미래 사진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이야기하면 된다고 하였다. 현재는 배우자와 한집에서 각방을 쓰고 있고 최대한 상대방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으며 앞으로 별거를 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점원은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듯 별 반응이 없이 주위에 나처럼 사는 사람들을 볼 때 어떤 기분이 드냐고 물었다.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비참해 보이지만 나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하였다.
점원은 그들은 당신의 생각만큼 비참하지 않으며 오히려 당신이 더 비참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왜 관계를 정리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우리는 생각이 다르고 합의점을 찾다가 결국 싸움으로 끝난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집에서는 평화를 찾을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우리 부부가 사막에 서 있는 선인장 같아요.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로를 가시로 찌르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각자에게 떨어져 먼 곳으로 가야 해요 하고 주장하였다. 점원은 벽에 있는 사진들을 다시 가리키며 이야기하였다. 미래의 사진은 당신의 선택입니다. 과거와 현재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현재 당신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정말 당신의 의도인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미래가 현재가 되었을 때 당신은 후회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미래 사진에는 말뚝 옆에 서 있는 독수리가 보입니다. 발에 묶인 쇠사슬이 풀어졌는데도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고 있네요. 그곳이 당신에게 자유롭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는 않아 보여요. 점원의 말을 들으니 벽에 있는 사진 어딘가에 그런 장면도 보였던 것 같다. 지금 사진을 찍어 볼까요? 점원의 권유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나의 미래를 그런 식으로 그리고 싶지 않아요 뭔가 다른 해결책이 있을 거예요 하며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당신은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나요? 점원의 물음에 나는 대답했다. 사실 결혼 전에도 서로 가 조금은 결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그러나 당시 나는 내 의도대로 상대방을 충분히 변 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결혼 시작부터 전쟁이 시작되었지요. 처음에는 배우자가 따라 주었어요. 그러나 자녀를 낳고 아내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더니 어느 사이 우리 둘 사이는 좁힐 수 없는 간격으로 벌어져 있었어요. 우리는 원수처럼 미워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서로 둥지를 소중히 여기기에 떠날 수가 없어요.
당신은 배우자를 미워하기 전에 잘못된 판단을 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거군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당신은 날카로운 가시로 상대방을 찌르지만 실제는 또한 자신을 찌르고 있는 것이지요. 당신이 스스로 자신을 찌르는 대신 상대방으로 하여금 찌르게 하는 것이지요. 당신은 그렇게 스스로를 벌하고 있어요 점원은 말을 이어 나갔다.
당신을 먼저 용서하세요. 누구든 잘못할 수 있어요. 우리는 신이 아니잖아요. 점원의 말에 어느새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우리에게 발톱은 필요하지요.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에게 발톱을 드러내서는 안 돼요. 그러면 어느 사이 맹수의 밥이 되고 말지요. 당신의 미래는 실상 두 가지 중 하나의 선택인 것 같아요. 맹수의 밥이 되느냐 발톱을 오므리느냐! 이야기를 마친 점원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맹수의 밥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발톱을 오므리고 살 자신도 없다. 그러나 나 자신을 먼저 용서하라는 그 말은 옳다. 그래 그렇게 해야 한다. 점원은 이제 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안쪽 낮은 계단 위의 스튜디오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찰칵하고 버튼 소리가 들리며 일순간 밝아졌던 조명은 다시 원상태가 되었다.
짧은 시간 후에 사진이 나왔다. 선인장 두 개가 나란히 영월 동강 위 구름 사이를 나르고 있었다. 신혼 초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며 무수히 많은 별을 보았던 그 하늘이었다. 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많은 희망을 품었던 그때, 그러나 지금은 낮이 되어 보이지 않지만 밤이 되면 그 별들은 다시 빛날 수 있을 것이다.
돈을 치르고 서둘러 나온 나는 사진점 뒤로 가서 한참을 목을 놓아 울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사진을 꺼내 보니 선인장 가시 하나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작고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양쪽에 나란히 피어 있었다.

- 제19회 부천신인문학상 수상(수필)
〔짧은 생각〕
‘미래의 사진점’에서 들려오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스스로 뒤돌아보면서 화해와 용서로 품어주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이다. 그럼으로써 삶을 새롭게 다시 일으켜 세우고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선인장의 가시처럼 아픈 고통으로 가득 찬 현실 속 얼룩진 삶일지라도 화해와 용서라는 세정제로 맑게 씻어내는 눈물겨운 정화 의식을 거쳐야 한다. 그러면 그 자리에 바로 한 송이 사랑의 꽃이 핀다는 것을 들려주는 한 울림의 메아리이다. 그 메아리가 바로 한참 동안 목 놓아 울었던 사진 속 선인장은 아픈 상처를 아물게 하고 오간 데 없는 가시의 자리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양쪽에 피었다. 이 자리에 바로 수필의 미학 한 송이도 피어났다.
이제 가까이 다가가면 멀어지는 사람이 아닌, 멀어져 갈수록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 영혼의 창으로 바라본 그 사람이 바로 내 곁에 핀 꽃인데, 차마 어찌 마음 한가운데 피어나는 꽃향기를 씻어낼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