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산 책다락 66]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책소개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 이반 투르게네프가 그려내는
가장 섬세한 사랑의 시작과 끝 〈첫사랑〉, 〈무무〉
‘16살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1833년 여름에 일어났다.’
모스크바의 정원, 한 여인의 미소, 그리고 조용한 혼란이 겹쳐지는 그해, 열여섯의 여름 속으로.
〈첫사랑〉은 한 소년이 처음 경험한 사랑의 떨림을 따라가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내가 처음 사랑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가슴 벅차던 그 순간, 이유 없이 흔들리던 그 마음,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작고 서툰 감정들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 편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무무〉
조용한 하인 게라심과 그의 곁을 지켜주는 작은 개 ‘무무’. 말하지 못하는 남자의 마음과 들리지 않는 세상의 잔인함이 서서히 드러난다. 어떤 사랑은 말할 수 없고, 어떤 상실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 단순한 사건 속에 인간의 고독, 권력의 폭력, 슬픔의 깊이를 담아낸 러시아 문학의 명작. 읽고 나면 오래도록 가슴 한쪽이 저릿해진다.

●Synobsis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 이반 투르게네프의 대표작
세계 문학 비평가들이 꼽은 ‘최고의 러브스토리’
150년 전 작품이 늘날의 감정을 뒤흔든다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다”
_이반 투르게네프
아름다움을 입고
곁에 두고 싶은 이야기로 재탄생하다
『사랑 3부작』
사랑의 탄생에서 상실까지, 세기의 작가들이 그려낸 감정의 진화사, 지금의 감각으로 다시 태어나다.
“사랑의 탄생, 사랑의 불안, 사랑의 잔향. 세 시대가 그린 하나의 감정.”
“당신의 책상 위에 놓일 가장 아름다운 사랑.”
첫 번째 이야기_ 이반 투르게네프 〈첫사랑〉
〈첫사랑〉은 1860년 러시아 문학 잡지 《독서를 위한 도서관》 제3호에 최초로 발표된 작품으로 투르게네프는 스스로 이 작품을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었다고 밝혔으며 자신의 감정과 가족사를 바탕으로 썼다.
〈첫사랑〉은 인간의 내밀한 심리와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가 어우러진 중편 소설로 투르게네프의 서정적 스타일을 여가 없이 보여주며, 작가 스스로 “유일하게 다시 꺼내 읽는 작품” 이라고 할 만큼 각별한 애정이 깃든 작품이다.
소설은 마흔이 넘은 주인공 볼로댜가 열여섯 살에 만난 스물한 살 여인 지나이다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써 내려간 일종의 수기이다. 지나이다는 사교 모임의 중심인물이자 주변 사람을 매혹하는 힘을 지닌 여성으로, 문학ㆍ예술에 대한 이해와 대화 능력을 비롯해, 겉으로는 유머와 장난기 있는 모습이 지만 내면에는 고독함을 간직하고 있다.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진 그녀를 사랑하게 된 볼로댜의 순수와 설렘, 열정과 고 통은 누구나 한번은 거쳤을, 그리고 거치게 될 첫사랑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투르게네프의 가족은 어머니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루토 비노바의 영지에서 살았는데, 어머니는 매우 부유한 지주였고, 아버지는 젊고 외모가 뛰어났지만 가난한 군 장교였다. 그의 어머니는 5,000명의 농노가 딸린 영지를 다스렸다. 〈무무〉 (1954)는 실제로 투르게네프의 어머니가 거주했던 모스크바 오스토젠카의 생가를 배경으로 한다(현재 이곳은 투르게네프 생가 박물관이다). 그곳의 농노들은 그녀의 허락 없이는 결혼 할 수 없었고, 잘못을 하거나 명령에 불복종 할 경우에는 이주시키거나 감옥에 보내졌다. 당시 영지에서 추방된 농노들은 부랑자가 되었다. 어린시절부터 어머니의 폭정을 지켜보며 어머니와 농노들 사이에서 중재자가 되는 상황을 경험했다. 이때 생겨난 농노제도에 대한 거부감은 작품 속 분위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반 투르게네프
(Ива́н Турге́нев | Ivan Turgenev,1818~1883)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 중 하나이자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문학 사실주의 분야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힌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인텔리겐치아 출신으로,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뒤, 알렉산드르 푸시킨, 니콜라이 고골 등 대표적인 러시아 진보 지식인들을 만난 후 '서구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인 <첫사랑>, <루딘> 등의 소설은 세련된 필체와 묘사로 유명하다. 중년기 이후에는 로마노프 왕조의 구체제에 반대하는 소설을 다수 썼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 세르게이 니콜라예비치 투르게네프는 굉장한 미남이었다 한다. 세르게이는 자신의 아버지(즉 이반의 할아버지) 니콜라이가 빚을 갚지 못해서 채권자 감옥에 끌려갈 상황이 되자 니콜라이는 아들 세르게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면서 제발 잘생긴 외모를 이용해서 부자 여성과 결혼해 자신을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결국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긴 세르게이는 자신보다 7살 연상이던 부잣집 유산을 홀로 다 물려받았던 (후에 이반의 어머니가 되는)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루토비노바와 결혼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 이반을 낳았다. 이러한 가정사는 투르게네프의 소설인 첫사랑에서도 반영됐다.
어릴적의 투르게네프는 기병 장교였던 아버지가 계속 외도와 도박을 하며 집 밖을 돌아다니다가 일찍 죽고 난 뒤, 오렐 지방의 대지주 집안 출신으로 유산을 홀로 다 물려받았던 어머니의 양육을 받았다. 투르게네프의 어머니는 프랑스인과 독일인 가정교사를 불러와 투르게네프를 가르치게 했고 프랑스어로 말하게 했다. 그래서 투르게네프는 일상 생활에서도 프랑스어를 써야 했고 신에게 바치는 기도도 프랑스어로 해야 했다. 반면에 러시아어는 농노 하인에게서 배웠고 러시아어로 된 책은 8살 때 잠겨있던 러시아어 책이 있는 방에 몰래 들어가 처음 봤다. 그가 러시아의 대문호로 날리게 되는 미래를 생각하면, 굉장한 아이러니가 따로 없었다.
투르게네프에 대해 가장 유명한 것은 러시아 농노 문제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대지주였던 그의 어머니는 농장을 관리하면서 사소한 잘못에도 체벌을 가하고 시베리아로 보내버릴 정도로 농노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했다. 그리고 그녀는 농노들을 마구 후려쳤던 채찍으로 아들도 함께 때렸을 정도로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투르게네프는 어릴 적부터 이런 어머니의 행동에 대해 반감을 가졌고 1850년에 어머니가 죽자마자 물려받은 농노 약 천 명(혹은 5천 명 이상)을 해방시켰다. 투르게네프의 이러한 행동은 러시아 귀족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다만 정부에게 '사회 전복의 가능성이 있는 요주의 인물'로 찍힌 부정적인 의미였다. 농노들을 그저 해방만 한게 아니라, 어느 정도 재산도 쥐어지고 몇몇 농노들이 일꾼이라도 일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면 받아줘서 언제라도 그만두고 마음대로 나가게 할 자유민 일꾼으로서 농장에서 일하게끔 했다. 이런 일꾼들에게도 매우 잘 대해줘서 이들은 투르게네프가 죽을때까지 농장에서 착실하게 일했다고 한다.
농노를 해방하고 몇 년 후에 발표한 <사냥꾼의 수기>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여행기 양식을 빌은 책으로 러시아뿐 아니라 서구권까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러시아 식자층 사이에서는 농노 역시 다양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환기시켰고, 책이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유럽 각지에 당대 러시아 농노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렸다. 심지어 당국이 이 책 때문에 그를 체포, 감금할 때, 러시아 전역에서 반대 여론이 거세게 들고 일어났을 정도. 투르게네프가 체포당할 당시 '대체 뭔 내용이길래 난리야?'하고 놀란 대중들에 의해 사냥꾼의 수기 초판이 순식간에 매진되면서 다시 금서로 지정하는 일마저 불가능해졌다. 금세 매진된 책이 재판을 거듭하면서 농노제 폐지 여론에 힘을 더해주었고 결국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 출간은 1861년 2월에 농노 해방령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러시아 정부의 지속적인 압박에 질려서 출국한 투르게네프는 이후 파리에 살면서 러시아 농노제를 반대하는 각종 작품을 발표하여 서구권과 러시아의 인텔리로부터는 찬사를, 정부로부터는 공갈협박을 받았다. 이후 1883년 연인이던 비아르도 부인의 별장에 있는 별저에서 병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