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49] 권갑하의 “누이감자”
누이감자
권갑하
잘린 한쪽 젖가슴에 독한 재를 바르고
눈매가 곱던 누이는 흙을 덮고 누웠다
비릿한 눈물의 향기
양수처럼 풀어놓고
잘린 그루터기에서 솟아나는 새순처럼
쪼그라든 시간에도 형형한 눈빛은 살아
끈적한 생의 에움길
꽃을 피워 올렸다
허기진 사연들은 차마 말로 못하는데
서늘한 눈매를 닮은 오랜 내력의 깊이
철없이 어린 꿈들은
촉을 자꾸 내밀었다

권갑하의 「누이감자」는 한 인간의 비극적 삶을 통해 생의 고통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력의 끈질김을 서정적으로 드러낸 시조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누이’라는 존재를 단순한 가족의 인물로 두지 않고, 상처 입은 생명과 역사적 삶으로 끌어올린다. 감자는 흙 속에서 몸을 키우며 다시 싹을 틔우는 식물이다. 따라서 ‘누이감자’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상처와 생명의 공존을 상징하는 장치가 된다.
첫 수에서 “잘린 한쪽 젖가슴에 독한 재를 바르고 / 눈매가 곱던 누이는 흙을 덮고 누웠다”는 구절은 강렬한 이미지로 독자를 붙든다. 젖가슴이 잘렸다는 표현은 단순한 육체의 상처를 넘어 삶의 모성적 근원과 존재의 일부가 도려내진 비극을 상징한다. 그 위에 ‘독한 재’를 바른다는 행위는 고통을 봉합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몸짓이다. 누이는 결국 흙을 덮고 눕는다. 이때 흙은 단순한 죽음의 자리가 아니라 다시 생명이 움트는 토양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비릿한 눈물의 향기 / 양수처럼 풀어놓고”라는 표현에서 눈물은 생명을 잉태하는 양수로 전환된다.
둘째 수에서 시의 중심은 더욱 또렷해진다. “잘린 그루터기에서 솟아나는 새순처럼”이라는 구절은 절망 속에서도 다시 돋아나는 생명의 힘을 보여준다. 잘린 자리에서 새순이 솟듯, 누이의 삶 역시 상처 위에서 다시 살아난다. “쪼그라든 시간에도 형형한 눈빛은 살아”라는 표현은 시간의 혹독한 압박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의지를 의인화하여 보여준다. 시간은 삶을 쪼그라들게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어지는 “끈적한 생의 에움길 / 꽃을 피워 올렸다”는 구절에서 삶은 ‘에움길’로 표현된다. 에움길은 감싸고 도는 길이며 동시에 고단하게 이어지는 인생의 궤적이다. 그 끈적한 길 위에서도 결국 꽃이 피어 오른다. 여기서 꽃은 고통을 견딘 삶의 증거이며 인간 존재의 존엄을 상징한다.
마지막 수는 이 시조의 정서를 더욱 깊게 만든다. “허기진 사연들은 차마 말로 못하는데”라는 구절에서 누이의 삶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사연으로 남는다. 허기진 사연이라는 표현은 삶의 결핍과 가난, 그리고 감춰진 역사적 고통을 상징한다. 이어 “서늘한 눈매를 닮은 오랜 내력의 깊이”라는 구절에서 누이의 눈매는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세월과 역사를 담은 상징적 얼굴이 된다. 그 눈매 속에는 세대와 삶의 내력이 서려 있다. 마지막으로 “철없이 어린 꿈들은 / 촉을 자꾸 내밀었다”는 구절은 이 시조의 핵심이다.
결국 「누이감자」는 한 누이의 삶을 통해 상처와 생명의 역설을 노래한 작품이다. 잘린 젖가슴, 흙, 새순, 촉과 같은 이미지들은 모두 상징적 장치로 작동하며, 삶이 지닌 비극과 회복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시 속의 누이는 고통 속에 누워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흙 속의 감자처럼 다시 싹을 틔우며 살아 있는 생명이 된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