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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42] 박○○의 "새싹"

이승하 시인
입력

새싹

 

박○○

 

썩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부정해야만 하는

슬픈 운명을 품은 새싹

 

수많은 사연 속을 날아 떨어진다.

온도와 빛 그리고 물……

껍질을 터뜨리는 고통을 이겨내고

뿌리를 내린다.

 

, 이제부터는 실전이다.

땅속 양분과 물을 양껏 끌어와

필사의 노력을 퍼붓는다.

최종 목적은 개화

 

그 유일한 목적만을 위해

수많은 사연을 거쳐 여기까지 온

나는 새싹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할 운명이다.

 

지금은 약하고

지금은 슬프고

지금은 힘들어도

결국 찬란하게 피어날 나는

 

오늘도 운명에 마주 선다.

 

―법무부 발행, 『교정본부 2022년 캘린더』 

새싹 [이미지:류유강 기자]

  [해설]

 

   교도소 마당에 떨어진 씨앗

 

  오늘은 교정의 날이다. 치아 교정이 아니라 교정 관련 종사자들의 사기와 교도소와 구치소 수용자의 갱생 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형을 사는 이들에게도 특별식이 제공되고 취사와 청소 등을 제외한 노역에서 벗어나 조금은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교도관으로 통칭되지만 교감, 교도, 교위, 교사 등 직급이 있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잘 아느냐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1년 동안 열 군데 넘는 교도소, 구치소, 소년원에 가보았기 때문이다. 수의(囚衣)를 입은 이들에게 시를 가르쳤다.

 

  이 시를 쓴 이는 시인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죄수나 재소자라고 부르는 이다. 교도소와 구치소 밖으로 유통되지 않는 캘린더에 실려 있어서 이름은 적지 않았다.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인쇄하는 계간 《새길》에도 실려 있다. 이 문예지 심사를 14년째 하고 있다. 소설로 쓸 소재는 많이 접했지만 가슴이 아파 못 쓰고 있다.

 

  씨앗은 무생물이다. 땅에 떨어져 썩으면 생명체로 둔갑한다. 예수도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씨앗이 바람에 날려 교도소 한 귀퉁이에 떨어져 적당한 온도와 수분이 있으면 뿌리가 생기고 새싹이 돋고 무생물이 생명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씨앗은 땅속 양분과 물을 양껏 끌어와/ 필사의 노력을 퍼붓는데 최종 목적인 개화를 위해서다. “수많은 사연을 거쳐 여기까지 온/ 나는 새싹이니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할 운명이라고 한다. 박 아무개 씨는 이렇게 참회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약하고 슬프고 힘들어도 결국 찬란하게 피어날 나는// 오늘도 운명에 마주 선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으니, 출소 이후에는 정말 활짝 꽃으로 피어 수많은 씨앗을 남기기 바란다. 그 씨앗들은 새싹을 틔워 이 세상을 향해 산소를 내뿜을 것이다. 반성문 10장 이상을 쓴 효과가 있는 시 쓰기, 그들에게 펜을 쥐어준 일을 했다는 것에 지금도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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