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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정여운의 "너는 술이다!"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정여운의 "너는 술이다!"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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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62]

너는 술이다!

 

정여운

 

주애酒愛는 돈보다 시를 벌러 다니고

금주禁酒는 시보다 돈을 벌러 다니고

 

주애는 기형도 시집에 2층 집을 짓고 있고

금주는 그 옆에 새로주酒 공장을 짓고 있고

주애는 매일 카톡으로 금주에게 시를 보낸다

금주는 매일 전화로 주애의 시를 평한다

 

금주는 시를 쓰고 싶어하면서도 못 쓰고

커피 때문에 술 때문에 ( ) 때문에

 

금주는 언젠가는 술시를 써야겠다고 말하고

주애는 술 시집을 내겠다고 말하고

그들은 술에 취해 술 이름을 읊는다

 

폭탄주, 해롱주, 이별주, 고독주, 신년주,

놀아주, 송별주, 축하주, 던져주, 다퍼주,

개소주, 나가주, 참아주, 잡아주, 죽어주, 살려주,

희망주, 울어주, 방황주, 후회주, 바다주, 안아주, 사랑주,

설雪주, 우雨주, 고통주, 사고주, 도피주, 감옥주,

출소주, 새로주, 해장주, 생명주, 부활주

 

금주는 술이 없다면 세상 살맛이 없다,고 하고

주애는 치마폭에 빠질 정도가 아니라면 좋다, 고 한다

 

주애는 시집 제목을 미리 지어 놓았다

너는 술이다!’라고

 

―『녹슨 글라디올러스』(2024, 지혜)에서

 

너는 술이다 [ 이미지 : 류우강 ]

  [해설

  

  술의 매력과 중독성

 

  주애와 금주가 티격태격 다투면서도 헤어지지 않고 붙어 다니는 게 신기하다. 술도 담배만큼이나 끊기 힘들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술 없이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인가. 이백이 일찍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하늘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하늘에 어찌 술별[酒星]이 있겠으며 땅이 또 술을 즐기지 않았으면 땅에는 응당 술샘[酒泉]이 없었을 거라고. 하늘과 땅이 다 술을 좋아했거니 내 술을 좋아해서 부끄러울 것 없다고.

 

  하늘의 별 중에 주성(酒星)이 있고 땅에는 주천(酒泉)이 있다니 사실은 궤변이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팔다라스는 술잔과 입술 사이에는 많은 실수가 있다.”고 했다. 술 때문에 신세 망친 사람이 많다. 17세기 영국의 목사이자 역사학자인 토머스 풀러는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을 해 술의 역기능에 대해 경고했다.

 

  프랑스 속담에 여인과 돈과 술에는 즐거움과 독이 있다.”란 것이 있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롱펠로는 미국 금주법 시대를 예견이라도 한 양 조심하라, 질병과 슬픔과 근심은 모두 술잔 속에 있다.”고 했다. J.H. 보스란 사람이 뭐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여자, 와인, 노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일생을 바보로 사는 것이다.”란 그럴듯한 말을 했다. 술 한잔하고 노래방에 가보시라. 고성방가만큼 즐거운 것이 있으랴.

 

  제일 큰 문제는 음주운전 사망사고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행패를 부리거나 욕설을 마구 하는 사람이 있다. 알코올 중독자가 쓴 수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마약을 끊을 때의 금단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통을 감내해야 함을 그 글을 보고 알았다. 술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밥보다 중요한 것이 술이다. 아아, 세상에, 술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니! 다퍼주, 나가주, 참아주, 잡아주, 죽어주, 살려주가 있는 줄 몰랐다. 죽기 전에 한 모금씩은 마셔봐야지. 『너는 술이다!』가 시의 제목이 아니라 다음 시집의 제목이 되면 정여운 시인은 운수대통할 것이다. 축하주 마실 일이 생길 것이다.

 

  [정여운 시인]

 

  대구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서울시립대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2013년 《한국수필》로 수필, 2020년 《서정시학》에 시 「문에도 멍이 든다」 외 2편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문에도 멍이 든다』『녹슨 글라디올러스』, 시 에세이집 『다알리아 에스프리』가 있다. 2024년 인천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 시 부문에 선정되었다. 논픽션집 『오름마다 붉은 동백』으로 김우종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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