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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80] 김일영의 "식구들"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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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

 

김일영

 

젊은 아들의 영정 사진을 등 뒤에 걸어두고

늙은 어미와 아비

젊은 아내와 아홉 살 아들이

옹기종기 이른 아침을 먹고 있었다

해가 뜨면 관을 끌고

화장장으로 가야 할 사람들

장례식장 창문이 푸르게 밝아오고 있었다

 

오늘 아침은 평생을 먹어온 밥이 낯설고

파괴된 몸이 담긴 관을

나르기 위해 온 내 인사에

못 먹을 것이라도 먹다 들킨 사람들처럼

화들짝 일어서는 식구들

피로가 달라붙어 있는 얼굴로

어색하고 부끄럽게 답례하는 그 모습이

서러워 빈 뱃속이 쓰리다

 

살아야 한다는 가혹함을 우린 모두

살아야 하고 나에게 다시 주어진 밥 한 그릇

그의 어린 아들만이 이 낯선 시간을

감정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후면 그의 관은 지상에서 치워질 것이고

몇 푼의 보상금과

그가 비워둔 식탁 의자는

식구들 곁에 우두커니 남겠지

우린 어쩌자고 이 새벽에

이 허기와 슬픔을 섞어 밥을 먹나

 

너는 이제 다시는

아무것도 먹을 필요가 없어 웃고 있는데

우릴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데

 

—『토닥토닥과 두근두근』(삶창시선, 2025)

식구들 _ 김일영 시인 [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참으로 슬픈 사연

 

  만고불변의 진리는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병사도 어찌 보면 자연사이다. 사람의 몸이 그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이니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이요 자연스러운 죽음이다. 그런데 이 시 속의 주검은 파괴된 몸이다. 교통사고 같다. 사업장에서의 재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소방대원의 죽음이나 천안함 폭침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아들은 죽었고 그의 늙은 부모와 며느리, 아홉 살짜리 아들이 이른 아침을 먹고 있다.

 

  시의 화자는 관을 운구하여 화장장에 가기 위해 이 집을 방문했다가 식사 장면을 본다. 그들은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 피로가 달라붙어 있는 얼굴로 어색하고 부끄럽게 인사를 한다. 화자는 그 모습이 서러워 빈 뱃속이 쓰리다. 아침 한 술 못 뜨고 달려왔으니 배가 더욱 고팠을 것이다. 지금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사람들이 화장장 앞에 줄을 서 있기 때문에 시간을 놓치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화자는 때늦은 아침을 먹는다. 이 비정함이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 어린 아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잘 알고 있다. 살아 있으니 모두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영정 사진 속 얼굴이 너무 젊으면 식구든 식구가 아니든 가슴이 얼마나 아프랴. 그런데 세상에는 비명횡사가 얼마나 많은가. 교통사고 중에서도 술 취한 자가 모는 차에 치어 죽는 죽음은 최악의 죽음이다. 놀라지 마시라.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2024년 지난해 138명으로 전년(159) 대비 13.2% 감소했다고 한다. 2020(287)과 비교하면 절반 넘게 줄어든 수치란다.

 

  식구의 한자어는 食口다. 식구란 한 집에서 살면서 밥을 같이 먹는 사이라는 뜻이다. 식구가 한 집에서 살면서 밥을 같이 먹는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 내 부모님과 형과 나와 누이동생이 같이 밥을 먹을 때는 그것이 행복인 줄 몰랐다. 지금 부모님은 이 세상에 안 계시고 형과 누이는 멀리에 있다. 그대 곁에 식구가 있고 그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대는 참 행복한 것이다.

 

  [김일영 시인]

 

  남해바다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그 섬의 훈장의 아들이면서 한약방을 하고 해녀 사업을 하던 아버지와 조실부모한 제주 본적의 해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일찍 학교를 그만두고 낙엽처럼 도시들을 떠돌다 중앙대학교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고 2003<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에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했고, 2009년에는 첫 시집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를 펴냈다. 현재 노랫말을 쓰면서 획기적인 방식의 쑥뜸으로 사람들의 신경을 회복시켜 몸 스스로 문제를 치유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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