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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조 해설] 박영식의 "한국어 외 2편 "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동시조 해설] 박영식의 "한국어 외 2편 "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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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28]

한국어 외 2편

 

박영식

 

한글은 힘이 세다

총칼이 졌으니까

 

이제는 지구촌서

당당히 공용어다

 

학자님

애쓰신 덕에

대한민국 엄지척

 


빼앗긴 글과 말

 

손으로 썼던 글씨

컴퓨터가 뺏어가고

 

입으로 하던 말은

에이아이가 가로채고

 

소중한

마음까지도

훔쳐갈까 겁나요

 
 

한글이 목숨

 

한글이 있었기에

말도 글도 예뻐졌고

 

잃을 뻔했던 나라

무궁화는 피어났다

 

이 겨레

영원하라고

우뚝 서신 외솔님

 

ㅡ『고래 그림 그리기』(커뮤니케이션볼륨, 2024)
 

  [해설]

  글과 말은 끝내 빼앗기지 않았다

 

  이 세 작품은 동시이면서 시조다. 요즈음 동시조 쓰는 분들이 부쩍 많아졌다. 참으로 반갑고 고무적인 현상이다. 아이들에게 동시와 시조의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말해줄 수 있으므로. (사)한국시조시인협회에서 반연간으로 펴내는 《어린이 시조나라》도 어언 31호가 나왔다. 동시조 짓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고, 중국 조선족 아이들도 열심히 동시조를 짓고 있다.

 

  박영식 시조시인이 동시로도 등단하더니 동시집, 그림동시집에 이어 동시조집을 냈는데 한글을 갖고 쓴 동시조가 3편이나 되어 모아 보았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식민지 조선은 곡물, 광물, 원목 등을 공출당한 것은 물론 전투인력(징병)과 노동인력(징용), 그리고 여성들까지 끌려가서 죽거나 끔찍한 인권유린을 겪었다. 그런데 많은 시인,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 등이 한글로 문학작품을 썼다. 물론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이후로는 자유로운 글 쓰기를 못하고 제한을 받았지만 친일작품일망정 한글로 작품을 발표했기에 일본에 동화되지 않았다.  (일본어 발표 작품도 꽤 있었지만 환영을 받지 못했다.)

 

  지금은 88개국에 세워진 256개의 세종학당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있다. 한국에 몰려오고 있는 중국인 학생들을 다년간 가르쳤는데 한국어 실력이 수준 이하면 뽑지 않으므로 수업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동남아 쪽에서 온 유학생들도 우리말을 꽤 잘한다. K-팝, K-컬처 덕분이기도 한데 “이제는 지구촌서/ 당당히 공용어다”는 백 프로 사실이다.

 

  두 번째 동시조는 컴퓨터가 우리 글씨를, 에이아이가 우리말을 빼앗아가고 나중에는 우리 마음까지 빼앗아갈까 걱정하는 내용이다.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닌데 무슨 방법을 이제는 강구해야 한다. 말과 언어를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넋과 영혼을 잃게 될 것이다.

 

  세 번째 동시조는 외솔 최현배 선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내용이다. 한글 교과서 편찬, 한글 전용 운동 전개, 국어사전 편찬 등에 매진했기에 세종대왕 다음으로 한글의 정립과 보급에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이 우리말을 없애려고 얼마나 지독하게 굴었냐 하면 1938년 4월부터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을 하지 못하게 했다. 총독부가 조선어 시간을 수학과 실업 과목으로 바꾸라고 각 시도에 지시했다. 1939년 10월부터 국민징용령 시행규칙을 공포해 길 가던 사람도 잡아가 입대시킬 수 있도록 했다. 1940년 2월에 창씨개명 실시를 명했고 8월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강제로 폐간시켰다. 1943년 1월에 보국정신대를 조직해 전국의 12세에서 40세까지의 미혼 여성을 취업시켜 준다고 속여서 끌고 갔다. 1944년 8월부터는 이것을 더욱 강화하여 여자정신대 근로령을 시행해 강제로 끌고 갔다.

 

  하지만 우리는 끝끝내 말을 지켰다. 최현배 선생은 1942년 10월 1일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에 구금되었고, 1943년 9월 함흥형무소에 이감되었다. 그 뒤 공판에 회부되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와 상고까지 했으나 1945년 8월 13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8ㆍ15광복이 되어서야 석방되었다. 초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박영식 시인의 동시조 3편을 가르치면서 이런 역사적 사실도 얘기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박영식 시인]

 

  경남 사천 와룡 출생.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2003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동시가 당선되었다. 제9회 청구문화제 동시 대상, 제12회 공무원문예대전 동시 최우수작, 제22회 새벗문학상, 제5회 푸른문학상, 제6회 울산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 2018년 올해의 좋은 동시집(한국동시문학회)에 선정되었다. 동시집 『바다로 간 공룡』『빨래하는 철새』, 그림동시집 『반구대암각화』를 펴냈으며 한국동시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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