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29] 정송전의 "위탁 육아"
위탁 육아委託育兒
정송전
우리 아이들은 태어난 지 한 달 후부터 아침이면 엄마 아빠가 없었다 온종일 돌봄 할머니랑 빈 하늘 빈 들녘만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깨었다 돌봄 할머니도 낯 익혀지면 가고 또 오고 그렇게 바뀌고 또 바뀌었다
여주 이포 궁말 시골 동네 큰아이가 서너 살 때 출근하는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울며 따라가겠다고 떼쓴다 엄마도 울며 논둑 지름길을 따라 학교로 가곤 했다 참외 곳곳인 동네 퇴근하며 보면 불룩 나온 배에 참외 씨가 붙은 채 세발자전거를 밀고 다니다가 팽개치고 단숨에 솔가지 막대기를 들고 비탈길로 뛴다 아빠 소리치며 넘어진다 석양빛 들고 퇴근하는 오토바이가 보이면 잰걸음으로 와 오른다 엉덩이를 들어 발을 구른다 얼마나 뛰뛰빵빵 했을까요
아이가 말을 할 줄 알았지만 엄마 아빠에겐 묵묵부답이다 나름 돌봄의 눈빛에 철이 들었나 보다 아침이면 엄마 아빠가 없는 이유를 알 턱이 없어 말은 하지 않아도 밤이 참 좋았을 것이다 엄마 아빠 기척 소리에 눈물 그득 고인 눈으로 웃어주던 어린 마음이 얼마나 헷갈렸을까
작은아이 초등학교 1학년 체육대회 날 수업을 올려 4교시 하고 단걸음으로 학교에 가니 다른 아이들은 엄마 할머니가 싸 온 도시락이며 맛있는 음료수를 먹고 있을 때 내 아이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땀범벅이 되어 엄마를 반겼다 애처롭고 안쓰러움에 눈물이 났다 체육대회며 소풍날 한 번도 따라가 본 적이 없어 성장한 이후에도 온통 미안함뿐이다 엄마 아빠는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 아이들은 위탁 육아로 성장시켰다 이제 한세월 돌이켜 생각하니 텅 빔이다.
*2017년 당신이 정년퇴임하고 나서 넋두리로 하는 말을 옮겨 적었다.
―『혜목산 귀거래사』(을지출판공사, 2025

[해설]
시로 쓴 참회록
60여 편이 실려 있는 시집에서 오직 이 1편만 산문시이고 나머지는 모두 운문형으로 전개되는 시이다. 시인은 자기 인생사에서 왜 이 어설픈 고백을 하게 된 것일까. 자식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미안함이 커서 이 시로 미안함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 아빠 두 사람 다 교육자란 직업을 갖고 있어 아이들을 집에 두고 매일 출근했으니 자기 아이들한테만큼은 최악의 부모였다.
보육원이라면 엄마와 아빠 두 사람이 다 없어도 선생님도 있고 동무들도 있다. 그런데 이 집에는 돌봄 할머니가 한 분 계실 따름이었다. 아이가 말을 할 줄 알았지만 엄마 아빠에겐 묵묵부답이라고 했다. 미웠던 것이다. 두 사람 다 밤에만 집에 오니 이상했을 것이다. 체육대회 때도 소풍날에도 한 번 따라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친자식을 위탁 육아로 키운 것에 대해 뼈아프게 후회하지만 이미 세월은 흘러가 버렸으니 후회해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집이 이 집밖에 없으랴.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어느 시설에 맡기거나 육아 경험이 있는 연세 든 분을 보모로 모셔야 한다. 그 사람이 아이를 자신의 친손녀나 외손녀로 여기며 키울까? 그럴 리가 없다. 이 시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중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결혼 이후 자녀 출생에 따른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느냐도 난제이다.
예전에는 집에 자녀가 열도 있었고 아홉도 있었다. 다 제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고 보았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는 부모는 없다. 이 시 속의 부모는 평생 자식을 걱정하며 살아갔지만 좋은 부모 노릇을 하지는 못했다. 자식을 낳으면 출산축하금으로 1,000만원을 주는 곳이 많은데 부영그룹의 회장은 열 배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세상이 온통 요지경 속인데 시인은 자식들에게 사죄하고 싶은 것이다. 미안하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 한 편의 시로 부모와 자식 사이가 회복될 수 있을까?
[정송전 시인]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중앙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62년 《시와 시론》으로 등단. 용인시 죽전중학교 교장, 한라대학교, 경기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한국자유시인협회 본상, 세계시문학상 대상, 경기도문학상 대상, 경기예술 대상, 현대 시인상 수상. 세계시문학회 회장 역임. 한국현대시인협회 지도위원, 한국작가협회 최고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세계시문학회, 미당시맥회 회원. 시집 『그리움의 무게』 『바람의 침묵』『꽃과 바람』『빛의 울림을 그린다』『내 이렇게 살다가』『바람의 말』, 한영시집 『숨은 꽃』『너를 맞아 보낸다』『꽃과 아내』『너와의 걸음걸이』 간행.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