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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정상현의 "지하철 일기—틈"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정상현의 "지하철 일기—틈"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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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89]

지하철 일기

—틈

 

정상현

 

아침저녁으로 지하철을 타고 강을 건넌다.

서울의 한 귀퉁이에서

한 칸 방을 차지하고 살아가기 위해선

누구나 이 열차에 몸을 밀어 넣어야 한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숨을 내쉬기도 어려운 공간에서 익숙하게 자리를 확보하고

일간지를 펴드는 이웃들.

 

제 틈을 만들기 위해선 남의 틈이 좁혀져야 한다는 사실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오래 마음 짠해 할 이유도 없다.

그 사이에 열차는 빠르게 터널 속으로 빨려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밀려가고 밀려오는지

우리는 매일 겪어오지 않았는가.

 

구겨진 어깨들 사이로 밥그릇만 하게 내다보이는 강물.

이렇게라도 한구석을 차지한 채 살아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벌써 언제 어디서 쓰러지고

뿌리째 뽑혀나갔을지 모른다.

 

벼랑 끝까지 밀려간 목숨들.

허리를 잔뜩 졸라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등바등

이 비좁은 틈을 향하여 살아가는가 아득바득

 

어떤 이는 갈비뼈가 부러진 채,

어떤 이는 내장까지 다 게워내고서야 비좁게 들어서지만

도무지 성한 몸으로는 들어설 수 없는 틈.

들어설 틈 없어도 마음껏 기웃거릴 수는 있는 서울.

백화점 지하 입구 속으로 무한정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

 

나는 오늘도 정겨운 이웃들이 있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지하철에서 마음을 씻는다.

 

—『사라진 나라를 꿈꾸다』(모아드림, 2003)

 

"지하철에서 마음을 씻는다" _정상현 [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지하철에서 도를 닦다

 

  나의 대학 4년 후배인 정상현은 27세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처음 몇 년은 식물인간의 상태로 연명하였다. 결국 반신불수의 몸이 되었고, 시력까지 잃고 말았다. 그렇지만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기적같이 일어나 시를 썼다. 눈먼 이를 위해 특수하게 만들어진 컴퓨터 자판을 익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그는 컴퓨터를 이용해 시를 수백 편 썼고 2권의 시집을 냈다.

 

  후천적인 장애인이라 더 아프고 더 괴로웠다.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을까만 그의 시는 비관에 사로잡힌 자의 넋두리가 아니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어디를 갈 때, 그 불편함이 어느 정도일까?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탈 때, 그 불편함은 겪어보지 않고선 짐작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사람이 붐비는 시각에 지하철을 타고 어디를 가야 한다면? 사고 나기 전에는 멀쩡하게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이젠 누구의 도움 없이는 외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상현은 자신의 외출 경험을 시로 썼다. 지금은 지하철에서 신문을 펴드는 사람이 없지만 이 시를 쓴 2000년경에는 가판대에서 산 신문을 이동 중에 읽는 이들이 많았다. 무가지 신문도 여러 종 나오고 있었다. 만원 지하철은 도무지 성한 몸으로는 들어설 수 없는 틈인데 그는 만원을 이룬 전철의 승객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을 다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다.

 

  시의 마지막 2, “나는 오늘도 정겨운 이웃들이 있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지하철에서 마음을 씻는다.”가 참으로 감동적인 것은, 그 자신 휠체어를 타야만 어디로 이동이 가능한 몸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정상현한테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3시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정상현 시인]

 

  1964년 전주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졸업 후 출판사 들꽃세상 편집부에 근무하다 1991, 큰 교통사고를 당함. 시집 『마음의 지옥에서 피우는 꽃』과 『사라진 나라를 꿈꾸다』를 펴냄.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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