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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호 에세이] 그리기, 마음을 연소시켜 닿는 태초의 기도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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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지독히 사랑하여 밤을 새워본 적이 있는지요. 

 

혹은 누군가의 안위가 미치도록 걱정되어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해 본 적이 있는지요.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마음을 쓴다'고 말합니다. 머리가 복잡해져 두통을 앓는 것과는 다릅니다. 마음을 쓴다는 것은 내 육신 깊은 곳에 고여 있던 영적인 에너지들을 장작처럼 태워 소멸시키는,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열병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 고독하고도 찬란한 붓질의 기원에 대해 조용히 고백해 봅니다.

한명호 作

땀을 뻘뻘 흘리며 육체를 혹사한 뒤끝은 달콤한 휴식으로 회복됩니다. 하지만 마음을 온통 소진해 버린 후유증은 그리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듯 뚜렷한 원인이 있는 마음 앓이는 그 문제가 해결되면 씻은 듯 낫지만, 화가가 화폭에 마음을 쏟아낸 병은 오직 다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려야만 낫습니다. 그림으로 다친 마음은 그림으로만 꿰맬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참으로 형벌 같고도 축복받은 예술가의 숙명입니다.

 

평범함을 넘어선 비범한 예술가에게는 작품의 완벽함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벼락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완성되는 것은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무서운 '갈증'의 시작입니다. 그것은 세속의 얄팍한 욕망이 아니라, 텅 빈 캔버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아주 순수하고 절대적인 존재감입니다.

한명호 作

만약 화가가 얄팍한 지식이나 계산하는 머리를 철저히 베어내고, 오직 캔버스와 물감에 온몸을 내던진 채 가슴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감정들을 손끝으로 쏟아낸다면 어떨까요. 비로소 타인의 영혼을 뒤흔드는 경이로운 작품이 탄생합니다. 화가로서의 진정한 생명은 바로 그 순간 시작되며, 내면의 마지막 불꽃 하나까지 남김없이 재가 되어 고갈될 때까지 결코 그 붓질을 멈출 수 없게 됩니다.

 

음악가들이 무대 위에서 스스로를 불태우듯, 진정한 창작의 열망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며 멈추지 않습니다. 기어이 자신의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장엄한 파국을 맞이할 때까지 타오릅니다. 창작을 위해 이토록 지독하게 마음을 내어주는 상태.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궁극의 경지일 것입니다.

한명호 作

그렇기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종교의 번듯한 사원이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인류의 가장 원초적이고 눈물겨운 신앙생활입니다.

 

그것은 머릿속을 시끄럽게 하는 지식과 일상의 얕은 감정들을 굳게 걸어 잠그고, 세속의 희로애락을 끊어내는 치열한 수행입니다. 분석하고 기억하려는 차가운 이성을 버리고, 오직 순수한 영혼의 주파수를 맞춰 보이지 않는 신(神)과 무의식적인 소통을 꾀하는 거룩한 제의(祭儀)인 셈입니다.

 

이 아득한 무의식의 심연 속에서, 화가의 손은 내 몸의 세포마다 각인된 태고의 기억들을 화면 위에 조심스레 꺼내놓습니다. 아주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재난을 피하고 복을 빌기 위해 동굴 벽이나 자신의 얼굴에 물감을 칠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종교 이전의 붓질은, 이성이 인간을 지배하기 전에 존재했던 가장 순수하고 폭발적인 창의의 세계입니다. 세속적인 욕심이 모두 증발해 버린 순수한 인체 본연의 갈망이며,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에서 신을 부르던 방언(方言)이자 주문(呪文)입니다.

 

나는 오늘도 신의 옷자락을 붙잡는 심정으로, 고요히 마음을 연소시키며 캔버스 앞에 섭니다.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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