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89] 이유진의 "값은 얼마예요"
값은 얼마예요
이유진
과자를 샀는데 질소값을 냈어요
봉투를 뜯으니 부피가 줄었고요
주민센터 재활용 기계가 200개 페트병을 세더니 2000원을 내줍니다
돈으로 계산되는 세상에 쓰레기로 돈을 번 날
700g 음식물쓰레기로 19원을 냈어요
뉴스가 터졌어요
값비싼 미사일이 날아드는 팔레스타인 땅에 사이프러스가 쓰러졌다는
신의 이름으로 쏘아댄 무차별 미사일 폭격에 아이들의 팔다리가 잘리고
55편이 실린 시집 한 권에 1만 2,000원을 냈는데
300원도 안 되는 시 한 편이 피 냄새를 없앨 수 있을까요
성수동 거리에서 7,000원을 내고 커피를 마십니다
이 커피 속에는 풍경 값이 포함되었어요
거리의 풍경에는 사이프러스가 있고
서성이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있고
재활용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수많은 신 신 신들이 있어요
그 값은 얼마인지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투성이예요
—『나무에게로 가는 길』(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2025)

[해설]
돈돈돈 ???
우리의 일상은 돈을 셈하면서 이루어진다. 비싸다, 싸다, 적당하다. 과자봉지 속에 질소가 들어 있어 빵빵하게 보이는 것이었지 안에 과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살 때마다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 주민센터 재활용 기계가 내가 버린 200개의 페트병을 세더니(우아, 많다) 2000원을 내준다. 얼마 안 되지만 기분이 좋다. 횡재한 기분이 든다. 길 가다 1만원권을 주우면 기분이 1 업되는데 5만원권을 주우면 5 업된다. 아파트 단지 내의 음식물쓰레기 수거 기계에 숫자가 적히는데 700g을 버리니까 19원이다.
돈을 꿨다가 갚기로 한 날 못 갚으면 (물론 큰돈이었을 경우다) 교도소에 가는 것이 이 나라의 법이다. 채무자가 경제사범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시집 한 권에 1만 2,000원 하는데 세어보니 55편이 실려 있다. 나누기하면 218원이다. “300원도 안 되는 시 한 편이 피 냄새를 없앨 수 있을까요”라는 말을 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미사일을 또다시 쏘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정말 대단하다. 12라운드를 뛰고도 기운이 팔팔한 권투선수 같다. 미사일은 플라타너스와 비슷하게 생긴 키 큰 측백나무(사이프러스 나무)가 쓰러질 정도의 위력이다. 아이들의 팔다리가 잘렸다는 외신을 접하지만 그건 먼 세상의 일이다.
화자는 성수동 거리에서 7,000원을 내고 커피를 마신다. 커피가 왜 비싼가. 풍경 감상 값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페트병은 재활용될 수 있지만 저 먼 시나이반도 쪽에는 서성이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있고 (우리도 한국전쟁 때 그랬었다) 재활용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지금도 싸우고 있는데 그곳은 예수가 제자들을 데리고 거닐었던 성지다. 기독교의 발상지가 전쟁터라는 아이러니. 그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는 아이러니.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이 돌아버린 세상! 사이프러스, 아이들의 눈동자, 재활용될 수 없는 것들, 알라신, 마호메트, 예수님, 하느님, 창조주, 절대자, 희생양……. 수많은 신의 ‘값’이 얼마인지 내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투성이이고 아아 미치겠다. 돌아버리겠다. 돈이 없어서.
[이유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52기.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