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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과 흔적, 그리고 여행의 풍경… 문순만 작가가 다시 자신을 만나는 시간

임만택 전문 기자
입력
“5년마다 나를 돌아보는 전시를 열자.”

1984년 첫 개인전을 시작하던 어느 날, 젊은 화가 문순만은 스스로에게 작은 약속 하나를 남겼다. 그리고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는 그 약속을 잊지 않았다.

 

2015년 퇴직 후 대구에 갤러리 더 블루(Gallery The Blue)를 열고 지역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돕는 일에 힘써온 문순만 작가. 갤러리를 운영하다 보면 때로는 비어 있는 전시 일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걸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는 웃으며 그것을 ‘땜빵 전시’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오랜 세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온 한 화가의 진심이 담겨 있다. 그리고 2026년 7월, 문순만 작가는 또 한 번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는 개인전을 연다.

문순만 作

이번 전시의 제목은 「흐름과 흔적, 그리고 여행의 풍경」. 작가는 말한다.

 

“나의 그림은 흐름이며 흔적이다.”

 

그의 화면에는 화려한 형상이 많지 않다. 검은색과 회색, 황토빛이 겹겹이 쌓이고, 긁히고, 지워지고, 다시 덧입혀진 흔적들이 남아 있다. 얼핏 추상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안에는 삶의 기억과 시간의 층위가 숨 쉬고 있다.

 

그림 속에는 어린 시절의 골목길도 있고, 고향 어귀를 묵묵히 지켜주던 당산나무도 있다. 사람들의 소망을 하늘로 전해주는 솟대가 있고, 연꽃과 목어(木魚)의 형상이 스쳐 지나간다. 당산나무는 자연 그대로의 생명력으로 마을을 품는 수호신이고, 솟대는 인간의 간절한 바람을 하늘에 전하는 안테나다. 그리고 목어는 세상 밖으로 눈을 뜨고 여행을 떠나는 또 하나의 자아가 된다.

문순만 作

문순만 작가는 유럽 32개국을 12차례에 걸쳐 여행했다. 여행길에서 만난 풍경들은 단순한 기록으로 끝나지 않았다. 빛이 스쳐간 자리, 낯선 거리의 공기, 오래된 건물의 그림자, 사람들의 눈빛은 모두 그의 기억 속에 남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행인상」 연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작품에는 사실적인 풍경이 등장하지 않아도 여행의 감성이 살아 있다. 어쩌면 그림은 장소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느꼈던 마음을 그리는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순만 作

문순만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캔버스 위에 쌓이는 물감의 층들은 단순한 색의 중첩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며, 삶이 남긴 기억의 결이고, 결국 나를 그려가는 또 하나의 풍경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완성된 이미지보다 여백이 많고, 설명보다 침묵이 깊다. 비워낸 자리에는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가 머문다. 숲속 역광 속에서도 함께 걸어온 사람들, 스쳐 지나간 인연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빛처럼 자신을 깨워준 존재들. 작가는 그것들을 ‘감사’라고 부른다.

 

“감사는 삶의 습관이고, 행복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빛이다.”

 

1954년생인 문순만 작가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부엌의 그을음과 재, 아궁이와 같은 일상적 소재를 통해 가족의 애환을 담은 「흔적」 연작을 시작했고, 대구의 골목길과 시장 풍경을 지나 당산나무, 연꽃, 솟대, 목어에 이르기까지 삶과 기억, 기다림과 희망을 화폭에 담아왔다.

문순만 作

오늘도 그는 그림 앞에 선다.

그리고 또 하나의 흔적을 남긴다.

 

어쩌면 이번 전시는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천천히 펼쳐 보이며 다시 자신을 만나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거울 속 거울처럼 길은 또 다른 길을 가리키고, 오늘의 나는 아직 만나지 못한 내일을 향해 조용히 걸어간다.

 

그 길 위에서 문순만 화백은 다시 붓을 들고, 삶이 남긴 흔적들을 한 겹씩 캔버스 위에 쌓아 올리고 있다.

 

전시 개요

  • 전시명 : 《흐름과 흔적, 그리고 여행의 풍경》
  • 작가 : 문순만(南嵉 文順萬, Moon Soonman)
  • 전시기간 : 2026년 7월
  • 장소 : Gallery The Blue
  • 출품작 : 「흔적」 연작, 「여행인상」 연작 등
  • 전시 주제 : 삶의 기억과 시간의 결, 여행의 경험이 남긴 흔적을 통해 존재의 의미와 내면의 풍경을 탐색하는 회화 세계
문순만 작가

문순만(文順萬, Moon Soonman, 南嵉)
 

  • 1954년 출생
  •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 계명대학교 대학원 졸업
  • 현 Gallery The Blue 관장
  • 대구예술인지원센터 활동

 

주요 작품 세계

  • 「흔적」 연작
  • 「여행인상」 연작
  • 당산나무 연작
  • 연(蓮) 연작
  • 솟대 연작
  • 목어(木魚) 연작

 

작품 세계

1980년대 초반부터 부엌의 그을음과 재, 아궁이 등 일상적 소재를 통해 가족의 애환과 사랑을 담아낸 「흔적」 연작을 시작했다. 이후 대구의 골목길과 시장 풍경을 비롯해 당산나무, 연밭, 솟대, 목어 등의 상징적 형상을 통해 삶과 기억, 기다림과 희망을 표현해 왔다. 유럽 32개국을 12차례에 걸쳐 여행하며 얻은 경험은 「여행인상」 연작으로 이어졌으며, 사실적 재현을 넘어 관람자의 기억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작품은 풍경의 재현을 넘어 삶의 여정 속에서 축적된 기억과 감정의 흔적을 담아내는 시적 기록이자,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발견한 존재의 의미를 담아낸 또 하나의 자화상이다.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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