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현 시인, ‘화목이네 책방’에서 북토크 개최… “소소하게, 감사하며”
박미현 시인이 오는 11월 17일(월) 오전 10시, 부천시 원미구에 위치한 ‘화목이네 책방’에서 북토크를 진행한다. 이번 행사는 신실 대표의 제안으로 마련되었으며, 시인은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라며 조심스러운 마음을 전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소소하게 해보려 한다”고 밝혔다.
일시: 2025년 11월 17일(월) 오전 10시- 장소: 화목이네 책방 (부천시 원미구 상동 564-9번지)
- 문의: 010-2431-1507
박미현 시인은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방송대 국어국문과와 단국대 행정법무대학원 사회복지과를 졸업했으며,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문학저널』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단한 이후, 『일상에 대한 모독』, 『그리하여 결핍이라 할까』 등 시집을 펴냈다.
2023년에는 첫 개인전 《박미현 시인의 그림으로 쓴 詩, 감정주의자》를 개최했으며, 10월에는 송내아트홀에서 두 번째 개인전 ‘기억과 기억의 숲’을 여는 등 시와 그림을 넘나드는 예술적 행
보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박 시인은 한국문인협회와 부천민예총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부천시민연합과 크라스키노포럼 공동대표를 역임하는 등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도 힘쓰고 있다.
이번 북토크는 시인의 작품 세계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뜻깊은 자리로,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따뜻한 관심이 기대된다.
박미현 시인의 ‘슬픔의 사랑론' / 맹문재 시인
박미현의 시 세계에서 ‘슬픔’은 지배적인 시어이고 제재이며 주제 의식의 토대이다. 슬픔의 방, 이기적인 슬픔, 나는 조금 슬프다, 오래된 슬픔, 슬픔은 항상 옳습니다 등의 작품 제목에서 우선 확인된다. “내 삶을 지탱해 준 건 슬픔”(「보문사에서」), “유물 같은 슬픔”(「거리」), “살아 있는 슬픔”(「오래된 내일」), “나는 슬픔을 믿는 사람”(「숲의 날들」) 같은 작품의 구절에서도 볼 수 있다.
시인은 “누군가의 슬픔에 기대어 울기도 했지”(슬픔에 대하여)만, 결코 슬픔에 함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의 의무와 책임”(「작은 시」)을 인식할 정도로 슬픔을 껴안는다. 시인은 슬픔을 감상적이거나 비관적이거나 염세적으로 대하지 않고, 슬픔으로 인해 소외를 느끼지 않는다. 슬픔을 부정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슬픔의 존재 자체를 인정한다. 슬픔을 자기반성이나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최선을 다해 동행한다.
슬픔에 대한 시인의 자세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으로 한정할 수 없다. 시인은 슬픔을 발생시키는 환경과 상황에 대해 주체적으로 대응한다. 슬픔을 타기 하기보다 슬픔을 발생시키는 요인을 주시하는 것이다. 작품들에 나타난 슬픔은 시인의 감정 형태가 아니라 판단 형태이다. 시인이 바라는 희망과 열망이 여실히 반영된 것이다.
시인의 슬픔에 대한 동반자적인 자세는 김수영의 ‘설움’에 대한 태도를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수영은 설움을 끌어안고 유한한 시간과 미지의 죽음을 인식했다. 서러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었고, 서러운 봄밤과 동행하면서 긍지의 날을 회복했다. 서러운 사람들과 함께 자유와 혁명을 노래했고,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배웠다”(「사랑」).
시인의 슬픔 인식은 인간 존재의 근원은 물론 사회적 존재성을 일깨워준다. 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와 사회에 적응하는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인지시킨다. 결국 시인은 슬픔의 서정성을 토대로 사회학적 상상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귀가 아프게 운다
편의점을 지나
아이를 지나
자전거를 지나
사거리를 지나
우는 게 생이라는 듯
온 힘을 다해
목이 터져라
울음 우는 매미들
나도 설움에 겨워 꺼억꺼억 운 적 있지
누군가의 슬픔에 기대어 울기도 했지
생은 잘 버무려진
슬픔 같은 거라고
힘껏 울음을 껴안는 거라고
울다 보면
슬픔이 나를 위로했지
힘이 되었지
―「슬픔에 대하여」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귀가 아프도록 울고 있는 매미들의 소리를 자기의 목소리로 듣는다. “우는 게 생이라는 듯/온 힘을 다해/목이 터져라/울음 우는” 매미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운 날을 떠올리는 것이다. 화자는 “설움에 겨워 꺼억꺼억 운 적 있”었고, “누군가의 슬픔에 기대어 울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화자는 슬픔에 휩쓸려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은 잘 버무려진/슬픔 같은 거라고”, “힘껏 울음을 껴안는 거라고” 여겼다. 슬픔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동반자로 삼았다. 그 결과 “슬픔이 나를 위로했”고, “힘이 되었”다.
화자가 슬픔을 타자적인 대상으로 여기지 않은 모습은 “나는 항상 조금 슬픈 거 같아요”(「나는 조금 슬프다」)라고 토로한 데서 볼 수 있다. “슬픔은 나의 영원한 조상”(「오래된 슬픔」)이라고 밝힌 데서도 마찬가지이다. 슬픔을 자신과 운명적인 관계로, 태초에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말이 있고 선과 악이 있듯이 슬픔을 근원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슬픔의 사랑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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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의 북토크 소개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든 소용돌이 휘몰아치는 한복판에 서서 시대를 아파하고 시대의 아픈 허리를 껴안았던 시인. 흐물흐물한 기름기 덩어리들의 탐욕과 오만하고 추악한 썩은 권력의 냄새를 찾는 구더기들이 우글거리는 쉬파리 떼들을 끊임없이 저주하고 증오했던 시인 박미현, 그래서 한숨처럼 내쉬는 호흡으로 작금의 상흔들을 어루만져 보려고 마음의 습도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book talk의 자리를 마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