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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한재희의 "소고기 해장국"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한재희의 "소고기 해장국"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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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37]

 

소고기 해장국

 

한재희

 

아버지와 기흥호수로 자전거 타고 오는 길

오산 고속도로 옆에 붙어 있는 오래된 해장국집에 들러

든든하게 한 그릇

합니다

 

두발자전거 처음 배운 일곱 살엔 육천 원이었던 소고기 해장국이

만이천 원이 되는 동안 아버지 나이도 쉰이 넘었습니다

 

항상 이겼던 자전거 내기에서 오늘은 아빠가 졌습니다

속상한 마음 숨기며 아빠, 벌써 늙었어? 왜 못 따라와? 하고 놀리니

얼큰한 해장국 쭉 들이켜며 야, 이 정도면 한창이야 합니다

 

그래요

나도

아버지도

건강하니 한창입니다

 

우리 모두

오랫동안 한창 합시다

 

―『네가 슬퍼서 참 다행이다』(출판사 핌, 2024)

 

소고기 해장국을 그려줘요
소고기 해장국

[해설]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시

 

오랜 세월 시를 써 왔지만 독자를 이렇게 기분 좋게 한 시가 있었을까? 나만 기분이 좋아진 것일까?  

 

아버지와 딸의 자전거 경주. 아버지가 지는 날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쑥쑥 자라는데 아버지는 쉰을 넘기고부터 어깨가 꾸부정해지고 체력이 영 예전 같지 않다.

 

세월이 더 흐르면 아버지가 자전거를 못 탈 날이 올 것이다. 딸이 아버지를 부축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두 사람 다 건강해서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릴 수 있으니 기쁨의 날, 축복의 날들이다.

 

친구 사이나 애인 사이에는 이별할 날이 오겠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는 사별할 날이 반드시 온다. 임종을 지키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예전에는 말했지만 부모 중 한 분이 숨을 막 거두는 모습을 자식이 꼭 지켜봐야지만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자전거 달리기에서 진 것에 대해 딸이 속상해 하는 것이 이 시의 핵심이다. 부녀가 저렇게 정다우니 마냥 부럽다. 부디 두 사람 다 오래오래 ‘한창’이기를 빈다.  

 

[한재희 시인]

 

1999년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의 상처와 후유증을 혼자 글을 쓰며 달랬다. 뷰티 디자인을 전공하고 네일샵 ‘네일고푸다’를 오산에서 운영하고 있다. 정식 등단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이 시집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4년도 ‘예술단체의 예비예술인 최초발표지원’을 통해 제작되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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